앨범 <Gongbu>가 동양이 거쳐온 음악을 눌러담았다면, 공연은 서양 — 정확히는 미국 쇼를 보는 것 같았다. 입장 전까지는 홍콩 같은 전경이었는데, 들어가니 보인 건 깔끔한 백색 조명과 커튼 그리고 즐비한 악기들이었다. 화면에 띄워진 무늬 때문일지 전자 회로 같기도, 무언가 남겨 보리라는 의지가 투영된 라이브 클립 촬영장 같기도 했던 현장에선 워밍업을 돕는 입장 음악들이 선곡됐다. 임박한 어느 시점부터는 바밍타이거 웹사이트 BGM이 반복해 나왔는데, 그게 바밍타이거를 보여주겠다는 무언의 의지처럼 들렸다.
나는 바밍타이거가 랜선 같다고 생각한다. 니퍼로 피복을 벗기면 각색의 선이 엉켜 있는데, 하나의 목적지로 이어져 세상에 연결되니까. 복잡한 회로가 제법 단순히 감상해도 느낄 수 있는 언어로 치환된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단적인 예시로, 집에서 정말 다양한 라이브 영상을 TV로 재생하다 보면 그 어떤 팀에도 감흥을 못 느끼던 어머니가 유일하게 집중해 본 팀이 바밍타이거다. 그래서 공연에 동행했고 많이 좋아하셔서 다행이었다. 혹시나 어렵게 다가가면 어쩌나 싶었는데 그렇진 않았던 모양이다. (그리고 이 기회에 다시 한 번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슬라이 앤 더 패밀리 스톤을 인용해 wnjn & The Family’s Tone 정도로 명명해도 됐을 초반 액트는 대규모 밴드 같았다. 줄곧 퍼포머로 무대를 꾸미던 멤버들도 악기를 하나씩 들고 원진을 중심삼아 ‘집으로’, ‘Janjan’, ‘차차차’로 한 획을 그었고, 앨범 내에서 가장 인상깊게 들은 곡들이 연이어 나와서 환호할 수밖에 없었다. 발매 후 처음 연주하는 자리였음에도 음반에서 느낀 것과 사뭇 다른 감각으로 와닿았다. 밴드 멤버들도 소위 ‘쪼’가 있는 연주자들이라 생각하는데, 이 힘들이 모여 개성 넘치는 협연이 펼쳐졌다. 엑스포를 개최하며 깃발을 흔들던 대사들이 무명의 대역 배우가 되었다가 밴드가 됐다. 어떤 역할 부여 없이 오직 음악이 있는.
‘고진감래’에서는 스포트라이트를 이어받은 소금의 힘이 보였다. “오랜 고질병인 내 양면성과 이기심” 같이 내면을 오래도록 관찰해 온 화자가 아이 같이 노래하는 모습. 귀여운 것 앞에 장사 없댔나. 여기저기서 앓는 소리가 들리는 와중에 “여기 있는 사람들 다 어떻게 노는지 모르는 것 같애”라는 도입부를 이용해 어떻게 생각하냔 물음으로 밴드 소개를 섞은 ‘Dance!’는 참 좋은 아이디어였다. 흥을 끌어올리기에도, 무대 위 모두에게 시선을 돌리기에도. 그 다음 ‘Nettaiya’도 나올 줄 몰랐던 곡이라 놀랐다. 하루오미를 무척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리메이크를 라이브로 접할 수 있어 더욱 반가웠던 마음…
‘공부’의 가사 “나는 공부가 진짜로 싫지만 오로지 너를 이해하기 위해서, 사랑을 이해하기 위해서, 당신을 용서하기 위해서 공부”엔 절절한 울림이 있었다. 직접 부르는 라이브기에 더욱. 막바지에 선곡된 ‘Moving Forward’에서 소금이 팬들 한 명 한 명을 손으로 짚으며 “Think about you”를 반복하는 모습에서도 다시 한 번 ‘공부’의 이해하고자 했던 “너”가 떠올라 감정 깊은 곳을 쑤셨다. 그 전까지 의외의 편곡이 돋보인 ‘Kolo Kolo’, ‘Spirit Chaebol’이나 ‘Keep On’, 최애곡 ‘Cunning City’와 ‘SOS’ 등으로 흥을 끌어올리다 닿은 감정이라 더.
유독 한 곡에 그 날의 기억이 담기곤 한다. 그리고 이번 공연의 기억을 담은 병은 ‘밤이에요’가 됐다. <Gongbu> 수록곡들 이후 꺼낸 기존 음악들이 “안줏거리 삼아” 씹을 게가 되고, 모두가 박수치며 음악에 화답하는 모습이 기억에 남았다. 후렴에서 말하는 아름다운, 합이 좋은, 찬란한 밤이 모두 여기 부합했다. 처음에는 조명과 연출이 눈을 사로잡다가 어느덧 정신 차리고 보니 물리적으로 볼 수 없는 애틋함, 훈훈한 기류 같은 것들이 눈에 보였다. 공연이 주는 마법.
얼마나 몰입할 수 있는가가 관건이라면 성공적인 두 시간이었다. 풍성한 소리가 집중을 도왔다. 고정 밴드 멤버 여섯에 코러스 네 명이 덧씌운 덕에 (올해 본 페스티벌 무대 중 최고로 꼽는) 이찬혁에 버금가도록 소리가 주는 희열이 있었다. 세 차례의 공연 모두 좌석에서 보는데, 이번이 사운드도 가장 잘 전달된 것 같다. ‘기억의 열차’가 다 지나갈 때까지 숨 죽이던 순간이나, 진한 떼창의 ‘Oui’나. 각기 다른 형태로, 넓은 스펙트럼으로 이뤄진 현장을 기억의 열차에 또 실었다.
#바밍타이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