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November 2nd 2026, 12:33 am
No.156
[컬퍼빌리티] 가제본을 읽고
브루스 홀싱어의 장편소설 [컬퍼빌리티] 가제본을 받아 처음 펼쳤을 때, 날마다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 환경 속에서 문득 떠오르곤 하던 묵직한 물음표가 머리를 스쳤습니다. 현장에서 크고 작은 결정을 책임지고 이끌어가는 입장에서, 편리한 시스템 뒤에 도사린 위험과 그 책임의 무게는 늘 가볍게 넘길 수 없는 화두였기 때문입니다. 때마침 자율주행 자동차 사고라는 극단적인 상황을 통해 인간의 도덕성과 기술의 윤리를 치밀하게 파고든다는 기획이 흥미롭게 다가와 자연스럽게 서평단에 참여해 책장을 잡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세계적인 인공지능 권위자인 아내와 변호사 남편, 그리고 아이들이 자율주행 차량으로 여행을 떠났다가 치명적인 교통사고를 겪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가족의 비밀과 균열을 밀도 있게 그려냅니다. 저자는 단순히 미래 기술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참혹한 사고의 원인이 기계의 결함에 있는 것인지 아니면 인간의 선택과 감춰진 비밀에 있는 것인지 냉철하게 추적합니다. 복잡하고 현란한 공학적 용어로 독자를 압도하기보다는, 가족이라는 가장 친밀하면서도 취약한 공동체 안에서 드러나는 불완전한 진실과 감정의 파장을 섬세하게 짚어낸다는 점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도서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은 기술 스릴러 특유의 속도감과 장르적 재미를 매끄럽게 살려내면서도, 독자로 하여금 '책임(Culpability)'의 주체가 누구인지 깊은 윤리적 사유 속으로 이끈다는 데 있습니다. 효율성과 속도를 좇으며 살아가는 현대 사회에서, 막상 문제가 터졌을 때 시스템 뒤에 숨거나 책임을 회피하려는 인간의 본성을 가감 없이 비춰줍니다. 지나치게 감정에 호소하거나 섣부른 해답을 내리기보다, 완벽할 수 없는 인간이 첨단 기술을 마주했을 때 겪는 균열을 덤덤하고 날카롭게 응시하도록 유도한다는 점에서 깊은 몰입감을 선사합니다.
다만, 이제 막 본격적인 사건과 인물들의 숨겨진 이야기가 시작되려는 찰나에 가제본 분량이 끝나버려 진한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사고의 진실도, 가족들이 서로에게 감추고 있는 비밀도 아직 제대로 드러나지 않은 상태라 과연 완본에서 이 거대한 서사가 어떻게 매듭지어질지 더욱 궁금증을 증폭시킵니다. 책장을 덮고 나니 보이지 않는 시스템과 속도에 휩쓸려 살아가는 동안 정작 우리가 놓치고 있었던 삶의 무게를 돌아보게 되었으며, 미처 다 읽지 못한 이야기의 결말을 본 책을 통해 꼭 확인하고 싶다는 강한 여운이 남는 의미 있는 독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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