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100k⠀
episode.1
⠀
트레일러닝에 입문한지 약 3개월쯤 지났을 무렵, 서울 한복판에서 산을 달릴 수 있는 서울100k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
여태껏 달려봤던 가장 긴 로드레이스도 32k였고, 장거리에 대한 경험이 전무했던 터라 솔직히 신청하기도 전에 겁부터나더라구요
⠀
'어떻게든 가겠지'
⠀
딱 이 마음으로 100km 신청을 눌렀습니다
⠀
완주할 생각은 없었고, 가보는데까지 가보자?
가 더 맞는 표현일 것 같네요
⠀
보통 50k 이상부터 '울트라'라는 명칭이 붙는데 그렇게 난생 처음 울트라 트레일러닝에 무모하게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
-
⠀
대회 전날, 집에서 모든 준비를 마치고 출근을 하였습니다
⠀
퇴근하자마자 찰스형네집으로 달려갔지요
그곳엔 유대장님과 찰스형이 대회날 곤텍스 테이핑 부착서비스를 위해 와계셨습니다
⠀
트레일러닝의 리빙레전드인 유대장님과 찰스형의 조언을 얻어 대회복장, 드랍백을 준비했고 대회운영을 어떻게 해나갈지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 시뮬레이션, 또 시뮬레이션... 긴장을 많이해서 그런지 대회 출발 4시간전까지 잠이 안와 1시간도 채 제대로 못 자고 대회장으로 이동하였습니다
⠀
-
⠀
새벽공기는 코끝이 아려올 정도로 시렸고
⠀
아직 여명이 찾아오지 않은 서울광장은 선수들과 부스 사람들, 그리고 대회관계자분들로 가득 차 조용할 틈이 없었습니다
⠀
모든 준비를 마치고 드디어 대회 출발
⠀
-
⠀
U1 정릉분소 주차장까지 약 13km는 무난하게 왔던 것 같습니다
⠀
동이 터오는 북악산 자락에 걸친 둥근 해는 갈 길 먼 저를 붙들어맸습니다
⠀
멍했습니다
⠀
'여기가 서울이 맞나?'
⠀
평상시 같으면 가만히 멈춰서서 사진으로 남겼겠지만 이 날은 온전히 눈으로 기억하고 싶었습니다
⠀
-
⠀
U2 가는 길에 해가 완전히 떠 헤드랜턴을 트런백에 집어넣고 열심히 돌계단을 오르고 있었습니다
⠀
아뿔싸, 졸음이 밀려오기 시작했습니다
⠀
힘든 업힐에 잠이 깰 법도 했지만 감겨오는 눈꺼풀엔 장사없더군요
⠀
왠 정자하나가 보이길래 그냥 지나치려다 땅에서 자는 것보다 백배 천배 나을 것 같아 바람막이를 이불삼아 트런백을 베개삼아 잠을 청했습니다
⠀
그렇게 30분이 흘렀을까요
⠀
그 짧은 시간동안 얼마나 깊게 잤는지 침을 질질 흘려 정자바닥이 흥건했습니다
⠀
아 이제 가야겠다 하고 짐을 챙기고 있는데 익숙한 얼굴이 지나가더군요
⠀
철기형이었습니다
⠀
"야 너 여기서 뭐해"
⠀
상황 설명할 틈도 없이 카페인을 구걸하였습니다
⠀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 울트라에 카페인도 안 챙겨온 정신나간놈을 철기형은 살뜰히 챙겨주었습니다
⠀
그렇게 형을 따라 동반주가 시작되었죠
⠀
-
⠀
U2를 지나 U3엔 뽀오얀 곰탕과 새빨간 깍두기가 우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하지만 우릴 기다리고 있던건 곰탕뿐만이 아니었습니다
⠀
스위퍼라는 저승사자가 또 있었습니다
⠀
30분간 낮잠을 퍼질러 자느라 U2부터 Cut Off가 많이 촉박해지기 시작해 결국 Cp에서 나온 시각이 스위퍼 출동시간과 얼마 차이가 안 날 정도로 매 순간이 위기였습니다
⠀
거기다 북한산을 다 올랐나 싶었던 U3부터 멘탈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
U2도 북한산이었는데 U3도 북한산, U4도 북한산이네요?
⠀
북한산만 아침부터 해가 지기전까지 하루종일 3번을 오르락 내리락하니 북한산놈이 너무 미웠습니다
⠀
이골이 나 북한산신령이 된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습니다
⠀
-
⠀
U5, 드디어 절반 지점인 55k에 도달하였을 땐 이미 해가 져 북악산까지 잠깐 썼던 헤드랜턴을 다시 꺼내들은 뒤였습니다
⠀
이곳엔 우리의 생명수랄까요 드랍백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도착하자마자 웻타월로 온 몸을 깨끗이 닦고 옷과 양말을 갈아입고 신발까지 싹 갈아신었습니다
⠀
찰스형 조언대로 똥꼬엔 바세린까지 발랐습니다(똥꼬 쓸리지 않게)
⠀
철기형과 부지런히 왔더니 Cut Off 타임이 넉넉히 남아 U5에선 충분히 먹고 충분히 휴식을 취할 수 있었습니다
⠀
솔직히 말해 '벌써 절반이나 왔어?'보다 '아직 절반밖에 안왔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
아따, 110k 정말 길구나
⠀
진짜 토나올 정도로 길고 길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