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생각하는 저의 가장 큰 힘은 즐거움입니다. 언젠가 친한 선배는 의아한 얼굴로 ‘넌 어떻게 즐거움만 쫓으며 사니?’라고 말한 적도 있지만, 저는 여전히 노력이나 재능보다 즐거움이 한 사람의 생을 이끄는 가장 단단한 뿌리라고 생각합니다. 안 그래도 시끄러운 세상, 일말의 즐거움마저 없다면 이 지리멸렬한 삶을 어떻게 버틸 수 있을까요. 즐거우면 힘들어도, 지겨워도, 질리지 않고 계속해서 할 수 있습니다. 이유없이 사랑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우연히 제 삶에 들어온 요리 또한 그랬습니다. 그저 즐거운 마음으로 꾸준히 요리를 했는데, 그 모습의 진정성을 알아봐 주신 주변 분들 덕분에 이렇게 또다시 책을 내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특별하거나 화려하지는 않지만 제가 부지런히 기록한 요리 에세이입니다. 20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원고를 썼지만, 단언컨대 이 책에 실린 글만큼 즐거운 마음 하나만으로 쓴 적은 드물었다는 걸 고백합니다. 그래서 책 안에는 음식과 요리에 관한 저의 흥겨움과 행복이 가득합니다. 부디 그 순도 높은 마음이 독자 여러분에게도 전해졌으면 좋겠어요.
부엌에 서는 시간은 오롯이 혼자 보내는 시간입니다. 재료와 나에게 집중하는 동시에, 내가 나에게 말을 거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그 시간들이 쌓이고 쌓이다 보니 어느새 재료만 봐도 만들 수 있는 메뉴가 줄줄이 소시지처럼 따라왔어요. 냉털 요리에 짜릿한 희열을 느끼게 됐고요. 그러면서 저는 요리를 통해 조금씩 자신을 치유하고 있었습니다. 부족한 나를 용기있게 대면할 수 있게 됐어요. 세상의 많은 불합리하고 속상하고 억울한 일들에 가랑잎처럼 힘없이 흔들리더라도, 그래도 조금은 의연하게 흘려 보내고 받아드릴 수 있게 됐습니다.
진심의 요리는 주변에도 가 닿았어요. 남편과 가족, 친구들은 내가 만들어준 것을 귀히 여기고 맛있게 먹어주었습니다. 거기서 받은 에너지는 또 나의 하루를 살 만한 것으로, 맛깔나는 시간으로 채워주었습니다. 이 긍정적 순환은 삶을 ‘그럼에도 살 만한 것’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산다는 건 꼭 남을 이기고, 대단한 걸 성취하거나, 이름을 날리는 데에만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주어진 선물 같은 하루를 그냥 나로서 잘 살아내는 것,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걸 맛있는 음식이 알려준 셈입니다.
요리를 꼭 해야 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그저 우리가 좋아하는 음식에 대해 읽으면서 각자의 추억을 되새기고, 배경이나 문화를 접하며 더 잘 이해하게 되고, 우리를 둘러싼 말없는 생명체들의 색과 향, 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다면 일상이 조금은 더 알록달록해지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마음이 헛헛한 날, 맛있는 음식을 먹고 기운차린 기억이 있다면 그 마음을 주변의 소중한 사람에게 나누고 베푸는 여유를 가져볼 수 있지는 않을까요. 이 책을 통해 계절의 감각, 맛의 즐거움, 그리고 생의 숨겨진 아름다움을 마주할 수 있다면 저는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 같아요.
앞으로도 저는 끊임없이 쓰고, 관찰하고, 감동하며 요리할게요. 그 즐거운 여정에서 우리 또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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