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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내면 끝난 줄 알았지. 집필의 완성은 책을 알리는 일까지 라는 걸 몰랐다. 책에도 썼지만 좋아하는 일의 이면엔 하기 싫은 일, 해야만 하는 일이 숨어 있는데 책을 쓰고 난 뒤에 벌어지는 일들까지도 사랑해야 한다는 걸 또 배운다. 사람들 앞에 나서는 걸 극도로 꺼리는 성격을 가진 내가 불과 3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을 어제 해냈다. 삼십여분 남짓한 독자의 윤슬처럼 반짝거리는 눈망울들을 바라보며 마이크를 손에 쥐었다.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을 더듬거리다 두서없이 중언부언 했다는 사실을 오늘 아침 정신이 맑아지고 나서야 기억을 해냈다. 공연히 독자의 시간만 축낸 게 아닌가싶어 정신이 아득해진다. 

그러나 북토크를 계기로 사람 앞에 서고 이야기를 전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해보지 않았던 경험을 또 하나 추가하게 되어 기쁘다. 부담스러운 자리인 건 확실하지만 부담을 이겨냈을 때의 내가 좋아서 하기 전과 하고 난 후의 내가 달라지는 모습이 반갑다. 좋아 하는 일을 위해 그렇지 않은 부분까지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는 책의 메시지를 몸소 실천한 것 같아 그 또한 기쁘다. 이렇게 힘든 고비를 하나 넘기면 일상이 쉬워진다. 회사가는 발걸음이 가볍다. 들어가서 커핑해야지. by @_kimjongjin
7
a year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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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장수 트레일레이스 Fall 40K-J
장수의 가을은 봄과 달리 날씨가 좋았다. 밤 늦게 전주 숙소에 도착해 쪽잠을 잔 것 치고는 머리가 맑고 몸이 가벼웠다. 최근 노들섬에 유배되어 단칸 방만한 공간에 갇혀 있으려니 좀이 쑤셔 곤욕이었는데 장수 대회가 가뭄에 단비처럼 찾아와 방생된 노루처럼 뛰었다. 봄의 장수는 겨우내 꽁꽁 얼었던 몸을 풀 겨를 없이 치룬 대회라 고통으로 가득찬 대회였다. 시험 준비가 덜 된 수험생이 안 풀리는 문제를 붙잡고 끙끙대는 꼴이었다. 장수를 즐기려면 훈련이 필요했다. 

봄과 여름, 내 주변에 달리는 환경이 달라지면서 불러주면 달려갔고 찾아와준 사람들과 또 달렸다. 작열하는 여름내내 내가 마신 물의 양만큼 아스팔트에 흘려버린 땀을 헤아려보면서 참으로 성실하게 달렸구나 싶다. 폭염주의보가 뜨나 비가 오나 달리러 나갈 수 있는 힘은 의지의 영역이라기보다는 습관 덕분이 아닐까 싶다. 힘들어도 하게 만드는 건 하고 난 후에 겪게 될 작은 성취 덕분이다. 작은 성취가 모여 습관을 형성하고 태도를 만드는데 내가 속한 환경의 덕을 크게 본 것 같아 마음에 부채감이 있다. 이 채무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나 또한 누군가에게 좋은 환경이 되어주는 것으로 퉁칠 속셈이다. 

장수의 가을은 봄과 다르게 달리기가 즐거웠다. 나는 방생되었다. 

 
JTR 40J
거리 39.66km
시간 06:10:52
획득고도 2766m

완주

@arcteryxkorea by @_kimjongjin
10
11 day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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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총깡총 두리번두리번 워크숍. 산을 감각하는 낯선 시선 배우기. 

배우들이 무대에 오르기 전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자의식을 의식하지 않는 것이란다. 자의식이란 자신을 의식하는 일인데, 배우는 상대방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의식하는 순간 온전한 몰입상태에 도달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 배우들은 스스로 망가지기를 주저하지 않는데 자신의 위치를 가장 낮은 곳으로 낮춰 놓으면 주변의 기대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오롯하게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다고 한다. 

워크숍에 모인 참가자들은 신발을 벗고 매트위에 올라가 자신을 낮추고 망가져 볼 기회를 가졌다. 탁구공만한 공을 손으로 튕겨 땅에 떨어트리지 않고 번갈아가며 공중으로 띄우는 놀이는 나를 무장해제시켰다. 워크숍의 장점은 실패해 볼 수 있다는데 있어서 일면식이 없는 사람들이 모여 서로 긴장을 풀기에 더없이 좋았다. 그렇게 몸을 푼 우리는 서로 얽혀 걷고 뛰고 멈추며 시간과 공간 그리고 지속성의 개념을 인지하며 낯선 시선을 배웠다. 평소에 내가 걷는 걸음의 속도를 인지하고 그 속도보다 빠르거나 느렸을 때 마음의 상태가 어떤지 확인해 볼 수 있었다. 내 속도에 따라 내가 바라본 주변 사물은 어떻게 변화하는지, 걸음을 멈춤으로써 발견하게 되는 사물의 이동은 평소에 깨닫지 못했던 낯선 시선을 가져다 준다. 

자리를 옮겨, 숲 속으로 들어간 우리는 오감을 깨워 나무와 숲과 구름의 모양을 관찰하고 풀벌레, 새 소리, 바람에 나부끼는 나뭇잎 소리를 듣고, 풀과 흙, 그리고 가을의 냄새를 맡고, 흙길을 밟고 나뭇잎을 스치며 길을 따라 달렸다. 

오르막에선 천천히 걸음을 옮기고 평지에선 가볍게 뛰며 내리막에서 빠르게 이동해 달리는 속도에 따라 나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는지 주변의 사물은 어떻게 보이는지 감각했다. 땀이 나고 숨이 가빠오며 사물을 인지하는 경험을 통해 산을 달리는 행위가 우리의 일상에 작은 균열을 일으키는 경험을 했다.

이 균열은 평소에 느껴보지 못한 감각이고 이 감각이 깨어남으로 인해 우리의 일상은 더이상 일상이 아닌 상태가 된다. 일상을 낯설게 바라보는 것이 산을 달리는 효용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니 산을 달리는 또 하나의 이유가 추가되어 기쁘다.

@arcteryxkorea by @_kimjongjin
4
25 day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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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크테릭스 기어 라이브러리
지난주 토요일 아크테릭스도봉산점 기어 라이브러리 세션에 다녀왔다. 아크테릭스에서 준비한 코스는 14km와 9km. 나는 14km 코스를 맡아 후미에서 달렸다. 노반LD4를 처음신고 달린 한 여성 참가자가 발가락에 통증을 호소해 그룹에서 많이 뒤쳐졌다. 신발끈을 풀고 쉬었다 달렸다를 반복했다. 그는 사일렌2 경험이 있어서 노반LD4도 같은 치수로 신었는데 생각보다 발볼이 좁아 사이즈 선택에 실수가 있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통증을 견디며 마지막으로 피니시라인을 통과했다. 참가자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분.

트라이얼 세션은 제품이 내게 잘 맞는지 확인하는 자리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제품의 특징을 아무리 상세히 읽어본다한들 한 번 겪어보는 것만 못하다. 이런 기회를 잘 활용하면 뜻하지 않게 나에게 필요한 특징을 발견하기도 하고 내게 중요하지 않은 특징도 살펴볼 수 있다. 때론 실수를 통해 신발을 선택하는 기준을 명확히 세우기도 한다. 마음에 품고 있는 제품이 있다면, 그것을 경험해 볼 기회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경험을 쟁취하고 볼 일이다. 

혹시 해당 제품에 관심이 있다면 아래, 아크테릭스 기어 라이브러리 정보를 참고해 주세요.

아크테릭스 기어 라이브러리 
아크테릭스 트레일 러닝화를 신고 직접 트레일을 달려 볼 수 있는 제품 대여 서비스입니다.
일자  2026.08.19(수) 9:00 - 2026.08.23(일) 19:00 상시신청
위치  아크테릭스 스토어 도봉산점, 서울특별시
비용  무료(1인기준)
액티비티  트레일러닝 · ALL
@arcteryxkorea by @_kimjongjin
3
a month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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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에 상암동 하늘공원에 있는 산악체험문화센터에서 아이들과 클라임을 체험했다. 국가대표 클라이밍 코치를 12년간 역임한 강사님의 지도를 시작으로 클라임의 사전적 정의부터 인공암벽을 오르는 실습까지 진행되었다. 클라임은 오르다라는 뜻으로 상체보다는 하체를 주동력으로 하여 위로 올라가는 행위를 일컿는다. 산을 오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암벽을 오르는 것도 두 다리를 주로 이용한다. 암벽을 타는 일은 상체를 사용하긴 하나 상체는 거들뿐 하체 힘으로 올라야 한다. 상체 힘은 턱걸이 봉에 팔을 펴고 매달렸을 때의 힘 정도면 클라임을 하는데 무리가 없다는 지도사의 말에 자신감이 차올랐다. 실제 12m정도의 높이를 2분도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오르는데도 팔 다리가 후들거려 내려가고 싶은 충동이 인다. 모든 운동이 그렇듯 가용할 수 있는 에너지를 적절한 때에 필요한 신체부위에 효율적으로 배분해야 하는 건 클라이밍도 마찬가지다.

암벽을 오르는 순서는 양 손을 뻗어 상단 포인트를 잡고 하단 포인트 위로 발을 딛고 올라선다. 그 다음 두 손으로 다음 상단 포인트를 잡고 두 다리로 다음 포인트로 딛고 올라서는 순서다. 몸은 루프에 고정되어 있어서 설사 포인트에서 미끄러진다해도 안전장치에 의해 천천히 하강하여 다치지 않는다. 루프에 고정시키는 하네스도 처음 입어봤는데 두 허벅지와 허리를 감싸는 세 개의 원을 루프 하나에 고정하는 구조다 보니 허공에 루프에 매달려도 허리나 허벅지가 쓸리거나 아프지 않고 마치 의자에 앉은 듯 편안해서 장비들에 내 몸을 맡기기가 수월했다. 밑에서 올려다보는 12미터는 높아 보이지 않지만 포인트를 잡고 딛는 시간에 온 신경을 집중하다보니 끝까지 오르는 2분도 채 안되는 시간이 10분처럼 느껴진다. 종을 울리고 줄 하나에 의존한 채 10미터 아래로 하강할 때 내가 의지할 거라곤 이 외줄 하나 뿐이라는 생각이 미치자 ‘생명줄’이라는 말의 뜻을 실감했다. 지면에 발이 닿자 다리가 풀려 휘청거렸다. 실내암벽도 짜릿한데 바람을 맞으며 오르는 바위는 어떠할까. 

인간은 위험으로부터 신체를 보호하기 위해서 방어기제가 발동한다고 한다. 특히 위험을 감지하면 부정적인 생각이 51%, 긍정적인 생각이 49%가 되어 뇌는 위험한 순간에 무모한 시도를 말리는 신호를 육체에 전달한다. 우리 뇌의 양 옆에 있는 해마에서 이 역할을 수행하는데 지도사는 이 해마가 우리에게 거짓말을 한다고 표현했다. 실제 위험하지 않지만 위험하다고 거짓말을 함으로써 시도를 망설이게 만들어 신체를 보호하려는 작용을 한다고 했다. 암벽을 오르고 높은 곳에 올라서면 더이상 올라가지 말라는 몸의 신호와 그것을 무시하는 용기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용기 있는 자는 부정적인 51%의 생각을 물리치고 51%로 긍정을 채워 과감히 시도한다. 무언가를 성취한다는 건 리스크를 감내하고 도전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51%의 긍정회로로 스위치를 바꿀 수 있는 연습이 필요하다. 높은 바위를 오르고 먼 거리를 달리고 가파른 슬로프를 내려오는 일상이 반복되면 그땐 우리가 해마를 속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by @_kimjong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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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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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달리면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어서 좋고 여럿이 달리면 상대에게 집중할 수 있어서 좋다. 매일 한 시간씩 운동하기로 마음을 먹은 후로 작년과 재작년은 혼자 달리는 시간이 많았다. 퇴근하고 집에 가기 전, 한 시간씩 안산을 뛰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달리면서 생각하는 것들, 가령 회사업무나 개인적인 일들에서 생겨난 고민 같은 것들을 생각하며 달린다. 달리고 나면 문제가 전보다 가벼워지는 경험을 하곤해서 달리는 일은 정신의 노폐물을 털어내는, 마치 중요한 의식처럼 삶의 한 축으로 작용했다. 달리기는 나를 들여다보는 일로 시작된 것이여서 혼자 달리는 일에 익숙해졌다. 

올해는 그간의 규칙을 깨고 혼자보다는 여럿이서 함께 달리고 있다. 여럿이 모여 뛸 때 좋은 점이란 달리면서 나누는 대화인 것 같다. 달리기와 관련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사는 얘기 같은 시시콜콜한 이야기도 나눈다. 대화에 따라 생각지도 못한 인사이트를 얻기도 해 너를 들여다봄으로써 나를 알게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달리기는 혼자 하는 운동이긴하나 함께 하면 한계를 넘어 더 멀리 달릴 수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매력적이다. 내 주변엔 운동이 끝나고 웃지 않는 사람이 없는데 어려움을 극복하고 끝내 웃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곁에 두고 자주 달리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든다. 

생전 처음으로 집단에 소속되어 달리기를 하고 있다. 모르는 사람과 무엇을 함께 하는 일에 나는 보통사람보다 에너지가 더 필요하다. 그런데 유독 달리기에서 만큼은 에너지가 크게 소모되지 않는다는 걸 올해 체감했다. 아크테릭스팀에 합류하기로 했을 때 나란 인간의 유형이 집단에 소속되어서도 달리기를 즐기면서 잘 할 수 있을지 스스로 의심했다. 지금은 왜 그런 생각을 했을지 모를 정도로 팀원들과 잘 섞였다고 생각한다. 아니 그들이 나를 잘 받아주었다.

얼마 전 염주호 선수와 가리산을 올랐는데 그때 그가 내게 한 말이 인상적이었다. 나이가 가장 많은 내가 팀원들에게 먼저 다가가 섞일 수 있도록 노력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는 취지의 말이었던 것 같다. 나는 그말에 반은 동의하고 반은 그렇지 않았던 건 오히려 팀원들이 스스럼없이 내게 달리기를 요청하고 함께 해주길 원하는 모습에서 마음이 크게 열렸기 때문이다. 내 입장에선 나보다 오랜동안 달리기로 경험을 쌓아온 집단에 속했음에도 불구하고 주눅들지 않고 다가갈 수 있었던 건 그들의 배려 덕분이지 않을까 싶다. 나이, 지위, 출신, 소속, 성적 따위로부터 벗어나 달리는 즐거움은 가장 중요한 가치라는 걸 그들은 말 없는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이들은 달리는 즐거움을 아는 집단, 그 즐거움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하는 집단이라는 걸 최근 몇 달 사이에 머리가 아닌 두 다리로 느끼는 중이다. 

요즘 나는 삼삼오오 모여 달리는 시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함께 힘껏 달리고 복숭아 한 알에 행복을 논할 수 있는 사람들이 내 주변에 이렇게나 많다니. 나는 복된 사람이 틀림없다. 혼자 달려서 얻는 에너지가 있고 여럿이 달려서 얻는 에너지도 있다. 올해는 에너지가 넘쳐날 예정이니 주변 사람들과 듬뿍 나눠야겠다. 
함께 달리실 분?

@arcteryxkorea by @_kimjongjin
10
2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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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과정에서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을 때에 나는 항상 뚫고 나갈 길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한 작품은 다음 작품을 위한 과정이고 계속적으로 작품을 해야 되는 근거가 된다. -유영국-

산 정상을 오르는 길은 여러가지 길이 있다고 유영국은 고민하는 딸에게 말했다. 뚫고 나가 본 사람만이 해줄 수 있는 말이 아닐까. 오전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그림 그리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친구도 줄이고 삶을 단조롭게 만든 그다. 혹여 술을 마신 다음 날엔 그림을 그리지 않았고 저녁의 밝기는 낮의 밝기와 달라 오로지 낮에만 그림을 그렸다는 말에서 그는 그림보다는 수행에 가까운 삶을 살았던 건 아닐까 싶다. 평생을 그림을 그린 그도 막다른 골목에 이르고 그것을 뚫기 위해 분투하고 안주하거나 만족하지 않고 하나의 작품 그리고 다음 작품을 끊임없이 그렸다. 예술가의 삶으로 국한하기엔 우리내 평범한 사람들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아 반갑고도 슬프다. 

대부분의 일에서 나는 종종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다. 사방이 막혀있는듯 갈 곳 없어 털썩 주저 앉다보면 앉아야만 시선이 닿는 곳에 작은 틈새로 쪽문이 열려있는 경우가 있다. 틈새로 열린 세상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를 데려가기도 하고 막혔던 문제에 실마리를 제공하기도 한다. 파도를 하나 넘으면 다음 파도가 오고 그 너머로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를 만나는 일은 삶이 가진 순리라고 이제는 받아들인다. 큰 파도를 타려면 작은 파도를 탈 줄 알아야 하듯 막다른 길을 뚫고 나가는 지혜를 키우는 일은 스스로를 키우는 일이 되기에 우리는 일을 계속해야 되는 근거가 된다. 

나는 일의 노예라는 결론. by @_kimjong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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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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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인동에 박노수 미술관은 박노수 화가의 생가다. 양옥과 한옥이 섞인 2층 벽돌집이다. 이곳은 규정상 신발을 벗고 슬리퍼를 착용해야 한다. 미술관이라기보다는 할아버지 양옥집에 놀러온 기분이다. 반들거리는 나무바닥을 지나 응접실과 방마다 살았던 흔적을 배경으로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전시보다 집의 구조와 생의 흔적을 쫓아 이곳에 살았던 당시의 생활상을 상상하는 재미야말로 박노수 미술관을 찾는 이유로 삼기에 충분하다. 

다른 어떤 것보다 내 시선을 사로 잡은 건 1층 작은 방, 방바닥에 깔린 종이장판이다. 어렸을 적 살던 봉천동 우리집 누런 종이장판의 기억을 소환해 할머니 무릎을 베고 할머니의 부채질에 잠이 솔솔 들던 그때의 나로 돌아갔다. 종아리와 손바닥에 닿은 맨들한 종이장판의 시원한 감촉이 불현듯 떠올라 허리를 숙여 바닥의 장판을 매만졌다. 어렸을 땐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았고 바닥에서 뒹굴거리기를 좋아해 장판과 장판이 겹쳐지는 부분을 도로삼아 자동차놀이를 했던 기억도 떠오른다. 바닥에 누워 창문너머로 보이는 하늘과 확성기에서 들리는 과일장수 아저씨의 쩌렁한 목소리가 들리는 오후 4시의 나른한 풍경을 만나게 해준 건 노랗게 익은 종이 장판 덕분이다. 

박노수 생가는 미술관이다. 박노수 화가가 생의 전부를 미술에 바쳤던 것처럼 그의 삶이 녹아진 생가도 하나의 작품처럼 남아있다. 작품은 사람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고 그가 살던 삶의 흔적도 예상치 못한 즐거움을 안겨준다. 얼마만에 느껴보는 포근함인지 모르겠다. by @_kimjong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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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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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서울시에서 주최하는 골목창업경진대회에서 어반플레이로부터 연사로 초청을 받아 60여명의 창업가에게 강연을 했다. 올해의 키워드는 나만의 서사. 서사란 단순한 사건의 나열보다 인간관계로 연결된 사건들의 연결방식이라고 정의한다. 쉽게 말해, 스토리는 일련의 사건들이고 스토리가 남긴 의미가 나에게 어떤 양분이 되었나를 찾아가는 일이 서사다. 

수사법 중에 은유를 좋아한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예술이 가진 창조성의 근원은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을 제자들이 던지자 ’그것은 은유다.‘ 라고 대답했다. A는 B다 에서 A와 B가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창의적이다 라고 말하기도 했다. 은유는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연결하는 능력이다. 커피에 관한 글을 써야 한다면 커피와 관련된 책을 찾기보다 커피와 관련이 없는 문학책들을 찾아 본다. 커피를 설명할만한 절묘한 예제나 비유를 찾게 되면 글은 술술 풀린다. 

나는 공과대를 나와 커피를 한다. 공과대와 커피는 거리가 멀어보이지만 공과대에서 배운 수학이 자영업에 큰 영향을 미쳤다. 수학공부가 정확성, 반복성, 지구력, 꼼꼼함을 길러준 셈이다. 자영업은 영업시간을 철저히 지켜야하고 같은 일을 반복할 줄 알아야 하며 오래버티는 힘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메뉴 또는 디자인과 같은 보여지는 것에 디테일을 요한다. 이렇듯 연결이 없어 보이는 일에 쓰임새를 찾아주는 일은 스토리에 의미를 부여하여 나만의 서사를 갖게 해준다.

사람들 앞에 나서기를 극도로 꺼리는 내가 마이크를 손에 쥔다. 이렇게 또 하나의 서사를 획득한다. by @_kimjong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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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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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간담회다. 매해 새로운 창업가에게 창업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마케팅부터 세무까지 깊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리노베링에서 올해도 연락을 주셨다. 3년 전과 비교했을 때 나의 상황은 나아졌는지 돌아보니 나아지기는 커녕 허우적대는 꼴이 예비창업자들보다 더 혼란한 상황에 놓여있어 누가 말을 하고 누가 말을 들어야하는지 알 수 없어서 헛웃음이 났다. 3년새 는 거라곤 말주변뿐이어서 내게 주어진 60분을 넘겨 80분간 창업자들의 소중한 시간을 축낸건 아닌지.

주로 내가 겪어온 일들에 관한 이야기로 그들은 나를 통해 희망을 발견하려하나 여전히 나는 어려운 상황을 통과하고 있다. 창업에 부푼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창업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로 전반을 채운 나는 창업을 뜯어 말리는 호밀밭의 파수꾼 역할을 자처했다. 과거와 달리 창업에서 성공할 확률이 줄어들고 있고 세상에 컨셉이란 컨셉은 모두 나온 것처럼 자극이 넘친다. 어디서 본듯한 인테리어와 디자인, 메뉴가 범람한다. 창업의 그림자를 절절하게 설명했으니 생각을 바꿀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업만이 살 길인 사람이라면 내가 살아남은 이유에 대해 한 번은 생각해 볼 만한 이야기를 전달하지 않았나 총평한다. 

동네상권에서 살아남는 전략, 마케팅 비법, 브랜딩 하는 방법, SNS 잘하는 방법 같은 질문엔 대답이 꺼려진다. 열 명의 사람이 같은 책을 읽어도 열 개의 해석이 존재하는 것처럼 방법론도 마찬가지라고 여긴다. 한 동네에 있는 다양한 업종의 사장님들은 자기만의 방법으로 생존을 유지하고 있다. 마케팅을 하지 않아도 장사가 잘 되기도 하고 반대로 마케팅을 적극 활용해 손님을 오게 만드는 가게도 있다. 가게를 살리기 위한 각자만의 방식이 존재할 뿐 절대적인 방법론이란 애초에 없을 뿐더러 설사 있다 하더라도 그 방법이 나에게 맞느냐가 더 중요해 보인다. 

나는 창업자들에게 스스로를 돌아보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깊게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길 주문했다. 그 속에 우리가 원하는 모든 질문에 답이 들어있다고 생각한다. 나를 바로 세우면 무엇을 원하는지 알게 되고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생기는데 그걸 커피든 과일이든 유형의 것에 담아 전달하면 된다. 철학, 제품, 공간, 메시지가 하나의 결로 맥락을 이루면 브랜딩은 절로 된다고 여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것을 끈기있게 밀어붙이는 지구력일테니 평소에 체력을 틈틈히 길러놓는 걸 추천하길 마다하지 않는다. 

올해도 새로운 창업자들과 만나 나의 쓸모를 발견했다. 올해도 살아남고 내년도 숨이 붙어 여전히 쓸모가 있음을 증명하고 싶다. 전반기에 획득한 경험이 싱싱하다. 하반기도 대단할 예정이니 부디 다시 만나 새로 획득한 경험을 나눌 수 있기를. by @_kimjong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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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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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 가족과 함께 캐나다에서 한달을 보내며 자연과 가까이 지냈다. 웨스트 벤쿠버에 사는 처제의 집에 머물며 집 뒤에 산을 산책하거나 달리기를 했고 집과 가까운 산으로 하이킹을 가기도 했다. 캐나다에 도착해 시차에 적응할새도 없이 미리 신청한 트레일 러닝 대회에 나가 시모어 산을 겁없이 누볐다. 시모어 산은 스키장을 운영할 정도로 산이 크고 경사가 급해 달리는 내내 애를 먹었던 코스다. 밴쿠버 도시에 가까운 산도 이렇게 험한데 로키산맥은 오죽할까. 

벤쿠버에서 900km를 달려 도착한 밴프는 로키산맥에서 뻗어 나온 큰 줄기 속에 자리하는데 워낙 아름다운 경관과 호수를 가지고 있어 전세계 여행객들의 발길을 사로잡는다. 생전 처음 보는 거대한 산맥에 둘러 싸여 끝없이 펼쳐진 병풍같은 산맥을 바라보면 평생을 다 바쳐도 오르지 못할 봉우리를 헤아리며 캐나다가 가진 자연의 크기에 압도된다. 밴쿠버든 밴프든 자연 속으로 들어가면 자연을 놀이터 삼아 즐기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발견한다. 로프를 가방에 친친 둘러 매고 헬멧을 쓰고 어디론가 향하는 사람들, 볼더링 메트를 등에 업고 커다란 바위를 향하는 사람들, 산 길을 달리는 사람들, 호수를 수영하는 사람들, 산 정상에서 텐트를 치고 백패킹을 하는 사람들, 산악자전거를 타고 비탈길을 질주하는 사람들을 흔히 만난다. 그들은 어린 친구들부터 머리가 희끗한 사람들까지 다양하다. 그리고 그들이 자연을 즐기는 솜씨는 하루 아침에 얻어진 실력이 아니라는 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그들의 삶은 자연에 녹아있다. 

적어도 내가 본 사람의 일부는 어려서부터 자연을 벗삼아 놀고 도전하고 성취하는 태도가 습관처럼 형성되었을 것이다. 작은 바위를 오르는 것부터 시작해 조금씩 높은 바위에 도전하고 그 성취를 바탕으로 수백미터의 산을 클라이밍하는 경지에까지 오르게 되었으리라. 해변가에 적혀진 푯말처럼 리스크는 온전히 당신의 것 이라는 문구는 결과의 책임을 스스로 질 것을 당부한다. 바다에 들어가는 것도, 먼 바다를 향해 수영하는 것도 오로지 당신의 책임이라고 푯말은 말한다. 리스크가 클수록 성취도 크다는 건 모르는 사람이 없듯 도전을 장려하는 아웃도어 문화는 우리가 갖기엔 장벽이 높은 부러운 문화이기도 하다. 

캐나다는 도전을 불러일으킬만한 산들이 도처에 널려있다. 클라이밍을 하고 빙벽을 타고 하이킹을 하면서 급변하는 자연속에서 도전하고 성취하고 위험을 감내하는 사람들에게 최적의 환경을 제공하는 셈이다. 사람들이 도전을 감행하기 위해 몸에 지닌 장비와 옷은 자연속에서 안전하게 긴 시간을 보내도록 허락한다. 생존을 위해 반드시 갖춰야할 도구와 장비 그리고 의복에 대한 사람들의 수요는 브랜드를 키워내는 토양과 같다. 사람들은 제품을 필요로 하고 브랜드는 사람들의 안전과 성취를 돕기 위해 제품을 세상에 내놓는다. 이 선순환은 브랜드와 개인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바탕이며 훌륭한 브랜드는 좋은 환경 속에서 자란다. 아크테릭스는 수십년에 걸쳐 아웃도어 문화를 키워낸 브랜드다. 브랜드가 태어난 캐나다에서 사람들이 자연속에서 브랜드와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보게 된 건 브랜드를 키워가는 사람에게 시사하는 바가 남다르다. 캐나다를 가지 않았다면 아웃도어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면 아크테릭스는 영영 만나지 못했을 터다. @arcteryxkorea by @_kimjong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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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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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설악그란폰도
장대비가 쏟아진다. 비가 온다는 예보에 그란폰도는 메디오폰도 코스로 단축운영된다는 소식을 문자로 받았다. 대회 전날 미리 도착한 숙소에서 새벽에 내리기 시작한 빗소리에 깨어 창밖을 보니 말 그대로 장대비다. 이 비는 경기내내 세차게 내렸다. 

코스가 단축되어 재밌게 타면 되겠다고 생각했다가 비와 바람과 추위로 혼쭐이나 나의 오만함에 치를 떨었다. 비에 몸이 젖어 추위가 찾아왔다. 강원도인지라 곳곳에서 예상치 못한 돌풍이 불었고 해발 1000m 고지에서 14km의 거리를 줄곧 내려가며 온 몸으로 바람을 막아내자 몸은 급격하게 식었다. 팔과 다리가 저리다 못해 감각이 사라져 무엇을 쥐고 무엇을 밟고 있는지 분간을 할 수 없었다. 몸이 굳는 걸 막아야겠다 싶어 내리막에서도 페달을 밟았다. 노면이 미끄러워 감속 운행하면서도 페달을 밟아야하는 아이러니. 탱크셔츠, 저지, 바람막이, 레인자켓까지 4겹의 옷을 입었는데도 땀이 나질 않아 나는 추위에 얼마나 무력한지 또 실감했다. 전해질을 탄 두 통의 물은 운행내내 한 두 모금만 마셨다. 갈증도 없었을 뿐더러 모자란 수분은 달리면서 얼굴로 흘러내린 빗물을 핥고 또 핥았다. 운행내내 셀프보급한 셈이다. 

많은 비가 내리는데도 대회를 강행하는 주최측의 기세에 놀랐다. 그걸 참가하겠다고 인제에 내려온 많은 선수들의 기세도 놀랍다. 이번 그란폰도 대회는 진짜 자전거를 좋아하는 사람들만 참가했다는 후문에 나는 수긍했다. 달리는 내내 비와 바람과 젖은 노면과 사투했지만 자켓에 떨어지는 빗소리와 흠뻑 젖어 더이상 젖을 게 없어진 자유, 그리고 악천후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경험치를 획득한 건 뜻밖의 선물이다. 그란폰도는 자신의 한계를 마주하는 자리로써 손색이 없는 대회이므로 코스는 줄었지만 한계는 넓어진 대회였다. 참가 인원이 적어 대회는 쾌적했다. 병목현상 없이 주로를 넓게 썼고 보급소는 한적했다. 많은 스태프들의 든든한 지원이 적은 참가자들에게 집중된 것 같아 이것이 황제라이딩이라고 대훈이에게 농을 쳤다. 비와 추위 덕분에 얻게 된 뜻밖의 선물이다. 

2026 설악 그란폰포 (우천으로 메디오폰도 코스 단축)
거리 105km
획득고도 1700m
시간 4시간 28분 57초 

완주 by @_kimjong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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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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