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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색은 모든 사물을 품는 어머니의 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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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흰색은 품는다. 세상 모든 색을 품는다. 검정은 폭력을 기반으로 어둡게 물들이지만 흰색은 밝게 품어 안아 긍정의 에너지를 나눠준다. 그래서 흰색은 어머니의 색이다. 또한 색상과 채도가 없이 오직 명도만 존재하는 절대적 무채색으로 다른 모든 색상을 돋보이게 만드는 최상의 바탕색이자 시각적 대조를 극대화하는 기준점 역할을 한다. 

 한국은 역사나 민속의 관점에서 흰색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백의민족'으로 대표되는 민족성은 평범함 속의 고귀함, 청렴, 자연과의 조화를 상징한다. 조선 시대 선비의 흰 도포는 인공적 가공을 최소화하고 절제를 중시한 미학을 보여준다. 게다가 흰색은 오랫동안 우리 민족에게 생의 마감과 순환, 명복을 비는 상복(喪服)의 색이기도 하다.

 서양에서 흰색은 고대 로마 제사장의 의복부터 시작해 종교적 신성함, 정직, 새로운 시작을 상징해 왔다. 웨딩드레스와 세례복의 흰색은 순결과 출발의 대표적 기호로 자리 잡았다. 이 외에 전쟁 시 투항을 나타내는 백기, 중립과 평화, 이념적 맥락에서의 백색 등 사회적·정치적 약속의 도구로도 쓰였다.

 예술과 시각 디자인에서 흰색은 단순한 빈 곳이 아니라 여백을 통해 주제를 더욱 또렷하게 만드는 적극적 요소이다. 건축가 리차드 마이어는 흰색을 '빛의 변화를 가장 극적으로 반영하는 완벽한 색'으로 정의했다. 때문에 미니멀리즘에서는 쓸데없는 장식을 배제하고 본질, 형태, 질감, 빛을 강조하는 핵심 매개체로 흰색을 활용한다.

 심리학에서 흰색은 마음을 정돈하고 깨끗함, 위생, 정갈함을 의미하여 병원, 연구소, 클린룸 등의 공간에 필수요소이다. 디지털 인터페이스에서 여백은 가독성과 정보 전달력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로서 애플을 비롯한 현대 글로벌 브랜드는 흰색을 첨단성, 프리미엄, 신뢰의 상징으로 적극 채용하고 있다.

 흰색이 인간에게 주는 영감은 어떤 것일까? 그것은 '가득 차 있음'이 아닌 '비어 있음'에서 오는 역설적인 힘에 기반한다. 가시광선의 모든 빛을 포용하면서도 정작 아무것도 주장하지 않아 창작자와 사유하는 인간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이를 좀 더 세분화 해보면...

첫째, 완전한 시작과 무한한 자유를 자극한다. 흰 종이나 텅 빈 하얀 공간은 막막함과 동시에 "무엇이든 새로 써 내려갈 수 있다"는 강력한 창조적 용기를 부여한다.

둘째, 본질을 향한 덜어냄의 미학을 가르친다. 화려한 색채나 장식이 사라진 흰 바탕 위에서는 대상의 미세한 곡선, 질감, 그리고 오직 빛과 그림자의 흐름만이 또렷해져 복잡한 현상을 접하는 인간에게 노이즈를 걷어내고 가장 핵심적인 가치에 집중하라는 통찰을 준다.

셋째, 여백과 침묵이 갖는 휴식의 가치이다. 소리로 치면 깊은 정적에 가까운 흰색은 과부화된 현대인의 마음에 숨을 쉴 공간을 제공한다. 가득 채워진 정보보다 텅 빈 여백이 더 깊은 여운을 남기듯, 흰색은 비워냄으로써 비로소 타인의 상상력과 생각이 들어설 자리를 마련해 주는 것이다.

넷째, 빛과 주변을 드러내는 수용성이다. 흰색은 스스로를 과시하기보다 자신에게 닿는 빛의 각도, 시간의 변화, 곁에 있는 다른 색상의 존재감을 가장 잘 드러내 주는데 이는 스스로를 비워 주변을 포용하고 돋보이게 만드는 너그러운 태도를 상징한다.

 흰색은 결국 무(無)의 상태가 아니라, 인간의 사고를 가다듬고 다음 단계를 열어주는 가장 가능성 높은 바탕으로서 영감을 제공한다. 즉 비움으로써 모든 것을 채우는 것이다. '비움으로써 모든 것을 채운다'는 것은 흰색이 품은 가장 고요하면서도 강력한 역설이라 할 수 있다. 무언가를 빽빽하게 채워 넣은 공간은 이미 정해진 답으로 가득 차 있어 더 이상 다른 가능성이 들어설 자리가 없지만 비워진 흰색은 세상의 모든 빛과 감정, 그리고 보는 이의 상상력을 가득 담아낼 수 있는 무한한 그릇이 되어주는 것이다. 조선 시대 달항아리가 화려한 문양과 강렬한 색을 완전히 덜어냈을 때, 비로소 그 은은한 백색의 여백 안에 사계절의 빛과 삼라만상이 담겼던 것처럼 삶과 예술 모두에서 비움은 결핍이 아니라 더 커다란 본질로 채워지는 궁극의 과정이다.

 흰색을 탐구하는 도조가 정화석 선생은 아래와 같은 말씀을 건네셨다.

 “흰색을 집착하지 않고 밖에 놓으니 나 혼자만이 아니라 참으로 부지기수의 스토리가 그 하얀색을 찾아가더이다. 그런데 그 흰색은 사물을 분별하지 않고 모두 다 품더군요.” by @ciyeongs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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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day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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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재미있을 당신, 누구나 인정하는 인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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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정희 대표는 누구나 인정하는 하남의 일꾼이다. 바쁜 생업 중에도 대여섯가지의 직함을 해내느라 눈코뜰 새 없이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사람들은 그의 생글생글한 미소(가지런하게 빛나는 치아가 매력적이다)를 먼저 떠올리지만 그가 고백한 삶의 뒤꼍에는 지나간 시절의 무거운 질곡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1. 꿈의 좌절과 가정사의 시련
 인대표는 어릴 적부터 부모님께서 늘 "사범대에 진학해서 선생님이 되어라.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면 참 행복할 것 같다"라고 말씀해 주셨다고 한다. 때문에 그는 자연스럽게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가 되는 것을 꿈꾸며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그 꿈을 펼칠 겨를도 없이 큰 시련이 찾아왔다. 인대표 부친의 사업 실패와 연이은 모친의 뇌출혈 등 잇따른 불운으로 온 가족은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경기도의 단칸방으로 이사하게 되었고 이런 상황 속에서 인대표는 꿈을 접고 실업계 고등학교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2. 이른 결혼과 치열했던 가정생활
 고등학교 졸업 후 부친이 다시 시작하신 소규모 봉제 공장에서 일을 도우며 그곳에서 공장 관리자로 일하던 남편을 만나 23살이라는 이른 나이에 결혼하게 되었다. 그러나 결혼 후에도 삶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서울 장안동의 구석진 지하 2룸 단칸방에서 시부모님, 시동생, 시누이, 남편, 그리고 본인까지 총 6명이 바글바글 함께 살며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중노동의 힘든 시기를 버텼다. 그러다 인대표가 46세, 남편이 51세 되던 해 남편마저 뇌출혈로 쓰러진 후 5~6년의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3. 공정무역과 마을 공방 활동
 남편을 떠나보낸 후 그에게 남은 것은 자유와 작은 전세방 하나였다. 스스로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현실 속에서 마을 공동체 활동을 하다가 본격적으로 공정무역을 접하게 되었고 제 3세계의 커피 농가 아이들이 자립하고 학교에 갈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마음에 공정무역 제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본인의 특기인 봉제 기술을 활용해 커피 자루로 방석이나 소품을 만들고, 스리랑카나 태국 치앙마이에서 수입한 직조 원단으로 앞치마, 파우치, 이어폰 케이스 등을 제작하며 악착같이 일했다. 버려지는 원단 짜투리를 알뜰히 사용하여 기후위기 대응과 순환경제를 실천하려 노력했고, 폐현수막으로 플로깅 가방을 만들어 배포할 뿐만 아니라 공정무역에 대한 전문성을 높이고자 4개월간 공부하여 바리스타 자격증도 취득했다.

4. 지금도 행복하지만 앞으로는 더 행복할 것
 인대표에게는 작은 꿈이 있다. 현재 운영 중인 공방('마음의 재봉틀')을 365일 문을 잠그지 않고 이웃들에게 개방해 두고 있는데 누구나 들어와 공정무역 차를 마시며 안부를 묻고 이야기를 나누는 사랑방 역할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향후에는 제대로 된 형태를 갖춘 공정무역 카페를 차려 공정무역과 재봉 기술을 가르치고 나누는 공간을 만드는 것, 그것이 그의 작지만 원대한 꿈이다.

 인대표는 무엇을 하든 그 일에서 재미를 찾는다. 언제나 현재보다 다음이 더 재미있을 것이라 굳게 믿으며 열정적인 삶을 살고 있다. 그래서 그를 만나본 사람들은 누구나 그를 인정할 수 밖에 없다. by @ciyeongs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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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가을, 도토리묵에 막걸리 한사발 하실래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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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콩...또르르...가을이라고 외치며 너도나도 땅으로 점프하는 도토리들이 야단스럽다. 고요한 숲 커다란 상수리 나무 아래서 멍때리다 적막을 깨트리는 요란한 소리에 가슴이 철렁한다. 바닥에 굴러가던 녀석을 주워들어보니 깜짝 놀라게 해서 죄송한 듯이 동그랗게 몸을 옹송그린다.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참나무류 도토리 형제는 크게 6가지라고 한다. 비슷비슷한 생김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양이 조금씩 달라서 상수리와 굴참, 떡갈의 모자(깍지)는 털모자이고 나머지 3형제 신갈, 갈참, 졸참은 매끄러운 민모자를 쓰고 있다. 

 도토리는 고구마, 감자와 더불어 배고프던 시절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구황식물이었다. 탄닌이라는 물질로 인해 그냥은 먹기가 힘들어 묵으로 쑤어 먹곤 했다. 물론 밥 굶는 사람이 거의 없는 오늘날에 도토리 묵은 배고픔을 달래기보다는 하나의 기호식품이 되었다. 대형마트나 식당에서 쉽게 살 수 있는 묵은(다람쥐 등 산속 짐승들의 겨울나기 때문에 구하기 쉽지 않지만)오랜 시간 정성들여 쑤어낸 진짜 도토리묵의 쌉싸름한 맛에 비할 바가 아니다.

 도토리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가만히 살펴보면 생각보다 귀요미다. 전체적으로 동글동글한 외모에 털실 모자를 꾹 눌러쓴 듯한 거칠거칠한 깍지(모자)와, 그 아래 자리한 매끄럽고 윤기 나는 단단한 몸통의 대비 등 조형적 균형도 완벽(?)하다. 이는 절제된 곡선의 아담한 형태를 통해 완벽한 소형화의 미학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위는 둥글고 끝으로 갈수록 살짝 뾰족해지는 유선형 구조는 손안에 쥐었을 때 묘한 안정감까지 선사한다. 숲의 정수를 그대로 축약해 놓은 듯 짙은 밤색, 브라운, 그리고 빛바랜 카키와 차콜 그레이가 이루는 색의 스펙트럼은 매끄러운 표면 위에서 햇살을 받을 때 그윽한 광택을 뽐낸다. 

 작고 흔해서 무심코 지나치기 쉽지만, 도토리는 거대한 참나무의 생명력을 단 하나의 작고 단단한 조형물 속에 압축해 놓은 듯한 완성도를 지니고 있다. 무심한 듯 숲 바닥에 툭 떨어져 있는 것만으로도 공간의 분위기를 따뜻하게 채우는 자연의 오브제 도토리...우리생활에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보니 개밥에 도토리, 도토리 키재기 같은 관련 속담도 생겨나지 않았을까 싶다. 

 이번 가을, 도토리묵에 막걸리 한사발 하실래예? by @ciyeongs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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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분샘, 다음에 들려주실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돌담

 허먼 멜빌의 소설 백경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나온다.

Ah! how cheerfully we consign ourselves to perdition!

 짧지만 강렬한 이 문장에 끌려 600페이지가 넘는 벽돌책을 다시 구매하게 되었다. 국민학생 때 문고판으로 읽고 40년만에 다시 읽어보는 흰고래 모비딕... 김옥분 선생에게 이 말씀을 드렸더니 며칠 후 선생도 필자의 말 한마디 때문에 이 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고 하셨다. 얼마나 반가웠던지! 

 국내 명문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이후 석사학위까지 취득하신 선생은 영문학뿐만 아니라 인문학 전반에 걸쳐 조예가 깊다. 영문 소설 읽기 수업을 개설하여 지인들을 대상으로 강의도 진행하고 문학 관련 다양한 활동을 하신다. 역사를 좋아하여 역사 관련 책을 쓰는가 하면 희곡도 여러 편 집필하여 하남시에 소재한 소극장에서 무대에도 여러번 올렸다. 그야말로 글쓰기의 재주꾼이다. 2026년 9월에 하남 소극장에서 감상한 연극 ‘꿈’은 열 살 초등학생의 꿈을 주제로 한 선생의 2026년도 경기예술활동지원 모든 예술 31 선정작이다. 

 극 중 정아는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자라는 10살 어린이다. 아빠의 주벽, 엄마의 가출로 정아의 마음은 늘 어둡지만 학교에서는 친구들과 잘 어울리며 밝은 미소를 잃지 않는 어린이다. 그런 정아의 꿈은 마법사가 되어 잃어버린 가정의 행복을 찾는 것이며 결국 그 꿈을 이룬다는 줄거리의 연극이다. 비록 군데군데 어린이들의 풋풋한 연기가 눈에 띄었지만 오히려 초가을 풋밤처럼 여리고 달달하였다. 게다가 소극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의 뜨거운 열기가 극의 진행에 감칠맛을 더해주었다. 출연진과 연출진의 노고에 진심으로 응원과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검정 안경테 너머 깊고 총명한 안광과 우뚝한 콧날, 짙은 눈썹, 무겁게 다문 침묵으로 인해 선생의 첫인상은 다소 어렵게 다가온다. 그러나 몇 번 자리를 같이하며 대화를 이어갈수록 지식의 광활함과 더불어 가슴은 더없이 포근한 분임을 알게 된다. 때론 엷은 미소와 함께 빛나는 눈빛은 소녀의 감성을 품고 있다. 타인과의 대화를 경청하며 금과옥조의 날카로운 조언도 아끼지 않는다. 인문학 활동 외에도 환경단체 등 다양한 외부 활동을 하며 지역 발전을 위해 항상 애쓰느라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 형편이다. 그 중 대표적인 활동이 연 3,4회의 시낭송회를 빼놓을 수 없다. 지역의 작은 카페에 자리를 마련하여 시를 쓰는 사람 혹은 시를 좋아하는 누구나 참여해서 시를 낭송할 수 있다. 소박한 행사지만 여기에 참여하는 분들의 마음은 절대 소박하지 않다. 특히 가을 낭송회는 계절을 알리는 창밖 가로수의 풍경과 함께 아름다운 가을밤을 수놓는 백미다.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을 무척 싫어하는 필자 역시 남의 시를 빌려 여러 번 참여했으며 늘 작은 두근거림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가슴 뿌듯하다. 

옥분샘, 다음에 들려주실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by @ciyeongs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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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롱박과 수세미 만져보셨나요?
 돌담

 세상에는 수많은 예술가들이 존재한다. 인류는 본격적인 문명이 시작되기 전부터 내면의 감정을 흔적으로 남기기 시작했으며 그 지적 유산은 수천년의 시간이 흐른 현대에 이르러 거대 건축물이나 음악, 회화 등의 다양한 형태로 이어지고 있다. 예술가들은 말하자면 그들만의 언어로 아름다움을 빚어내는 마술사들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고 기억되는 예술가들을 ‘거장’이라 부르며 칭송한다. 음악, 건축, 미술 등 여러 분야에 불후의 명작들을 남긴 그들은 후손들에게 인류의 위대함을 증명한 이들이다. 그런데 불후의 명작은 인간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우리 주변에서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지난 봄에 여린 싹을 틔운 후 뜨거운 여름을 이겨내고 마침내 아름다운 자태로 자라난 조롱박과 수세미에서 발견한 자연의 경이로움이 바로 그것이다.

 봄에 씨앗을 뿌려놓은 조롱박이 탐스럽게 여물고 있다. 비오는 날 촉촉하게 젖은 표면의 섬세한 잔털에서 따스함과 청량함이 느껴진다. 꽃이 지고 어린 박이 맺힐 때의 색은 연두라 할 수 있지만 지금의 색감은 초록도, 연두도 아닌 흡사 고려 청자의 비색(?)에 가깝다. 무엇이라고 딱 정할 수 없는 오묘한 색감이다. 같은 박과의 형제이면서도 ‘박’과 ‘조롱박’은 생김새가 너무 다르다. 그낭 한 통으로 둥글넓적한 박은 여유로움과 무던함의 남성적 이미지라면 조롱박은 잘록한 허리에서 느껴지는 유려함과 더불어 에로티시즘 마저 엿보인다. 수확 후에 잘 말리면 ‘표주박’으로서 황톳빛 고운 또 다른 맵시를 자랑하는데 이런저런 치장을 하고 싶고 늘 곁에 두면서 고운 선을 즐기고 싶다. 신은 어쩌자고 조롱박을 저리 아름답게 만들었을까...

 수세미는 이름 그대로 수확해서 잘 말리면 설거지용 수세미로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한창 자랄 때는 초록색 짙은 색에 가지 같은 생김새인데 길쭉길쭉하면서도 한 덩치 하는 덩굴성 1년초 이다. 사실 인공 수세미가 넘쳐나는 세상에 굳이 주방용(혹은 식용)으로 쓰이기 보다는 관상용 목적이 더 클 듯 하다. 봄에 울타리 아래에 심거나 따로 지주를 세워 심으면 7~8월쯤 시원한 초록색으로 휘감아 올라가는 자태를 볼 수 있다. 거기다 초록색 덩굴들 사이로 빼꼼히 얼굴을 내민 노랑꽃은 강렬한 색의 대비를 뽐낸다. 꽃들이 지고 수세미가 달리기 시작하면 올망졸망 어린것들이 날로 자라나는 모습에 흐뭇해지는 대표적인 반려식물이다. 그런데 이 수세미를 가을녁에 수확해서 갈색 껍질을 걷어내면 속살은 마치 해면처럼 구멍이 숭숭 뚫린 기묘한(?)형태이다. 이걸 잘라서 설거지용으로 쓴다는 것인데 막상 구해놓고 자세히 들여다 보니 설거지용으로 도저히 사용하기 싫은 독특한 매력덩어리이다. 가득찬 듯 하면서도 비어있다. 황색과 흰색을 적당히 버무린 색상도 조화롭다. 어느 조각가가 이렇게 아름다운 작품을 구상할 수 있을까...촘촘하게 얽혀있는 섬유질의 가느다란 조직들을 만져보면 손 끝으로 전해오는 감촉은 또 얼마나 생경한지...ㅎㅎㅎ

조롱박과 수세미 만져보셨나요? 참으로 자연은 위대한 예술가요 창조주입니다. by @ciyeongs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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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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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해 보이는 반복 속에서 유일무이함을 발견해 보기

 돌담

 이 땅에서 초가삼간은 가난의 상징이었다. 70년대 어린시절을 경상남도 깡촌에서 자란 필자는 초가삼간 가난의 굴레속에 흙바닥을 뒹굴며 흙과 함께 살았다. 비만 오면 마당은 질척한 황토밭이 되어버려 신고 있던 고무신이 파묻히기 일쑤였던 그 집이 80년대 들어 지붕은 기와로, 마당은 시멘트로 대체되었고 이제는 오랫동안 빈집으로 늙어가고 있다. 

 처마와 흙마당이 있는 집에서 살다보면 독특하고 재미있는 경험이 있다. 비오는 날 낙숫물 바라보기다. 여름 장마철에 며칠 동안 비가 내리면 처마 밑 마당에는 동그랗게 홈이 패인다. 그곳을 마루에서 물끄러미 쳐다보노라면 길게 궤적을 이루며 떨어지는 물방울은 퐁퐁 청량한 소리와 더불어 눈부시게 아름답다. 한방울 또 한방울, 끝없이 떨어지는 빗방울은 지루하지 않은 자연의 하모니다. 그런데 그 시절 품었던 의문 중 하나...처마의 같은 장소에서 떨어지는 낙숫물이 왜 바닥에는 늘 다른 파문을 일으킬까? 이리저리 찾아본 과학적 해석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분명 똑같아 보이는 낙숫물이지만 처마 끝에 맺혔다 떨어지는 물방울의 부피, 무게, 표면장력은 매번 일정하지 않으며 낙하 직전 떨어져 나오는 순간의 형상이나 물방울 내부의 미세한 진동 형태도 물방울마다 제각각이기 때문에 매번 완벽히 같은 파문이 생기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는 카오스 이론에 의하면 눈에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차이가 유체 역학을 만나 완전히 다른 결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또한 낙하하는 짧은 순간에도 공기의 기온, 습도, 미세한 바람의 흐름(난류)이 끊임없이 변하며 이로 인해 물방울의 낙하 궤적, 충돌 직전의 속도와 각도가 달라진다.

 새로운 낙숫물이 떨어지는 바닥 또한 완전한 정지 상태가 아니다. 이전 물방울이 남긴 잔물결, 수심의 변화, 바닥의 먼지나 이물질 등이 새로 떨어진 물방울과 복합적으로 상호작용하게 된다. 우리가 보기엔 늘 똑같은 처마 밑이지만, 자연에서는 단 한 순간도 동일한 물리적 조건이 존재하지 않는 셈이다. 물리학에서 이는 '초기 조건의 민감성'이 만들어내는 고유함이다. 미세한 물리적 변수들이 결합해 낸 단 하나의 계산 결과이다.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는 헤라클레이토스의 통찰처럼, 완전히 동일한 장소와 순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전 물방울이 떨어진 수면과 지금의 수면은 이미 다른 물리적·시간적 상태이다. 처마와 바닥은 '일기일회(一期一會)', 즉 생애 단 한 번뿐인 인연을 맺는다. 처마는 매번 다른 마음으로 붓을 들어 물방울이라는 먹을 떨어뜨리고, 바닥은 그 호응을 파문이라는 무늬로 받아내며 찰나의 순간 퍼졌다가 사라지는 동심원은 사라짐으로써 완성되는 존재의 순수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얼마나 무구한 자연의 섭리인가...

 동일해 보이는 반복 속에서 유일무이함을 발견해 내는 시선이야말로 세상을 깊게 읽어내는 특별한 경험이다. by @ciyeongs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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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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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되는 것은 정복하려 하지 말고 다른 도구와 방법으로 타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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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도 영월에는 팔괴리가 있다. 지역에 8개의 계곡이 있다하여 팔계리(八溪里)라고 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팔계리와 괴안리(槐安里)의 첫 자를 따서 팔괴리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디지털영월문화대전). 이름처럼 여러 개의 계곡을 지나고 산을 넘어 도착한 팔괴공방은 풍광수려한 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공방주인 이광록 선생이 문앞에서 맞아주었는데 선생 곁에 조용히 기다리던 콜리의 격렬한 환영 인사가 모두를 유쾌하게 만들었다. 

 시저 트러스(Scissor Truss)공법으로 주인장이 직접 지었다는 공방에는 작업용 도구와 나무, 작품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2층에는 사무실도 있어 필요한 경우에는 취침도 가능하다고 한다. 전체적으로 상당한 규모의 공방인데 일부 전문가의 도움을 제외하면 용접까지 직접 하셨다니 작업에 남다른 능력치를 가지셨음에 분명하다. 여기저기 자리하고 있는 스툴이나 생활용품의 만듦새 또한 예사롭지 않다. 

 손수 차려주신 돌배차를 홀짝이며 오늘 작업에 대한 몇가지 설명을 들은 후 쿡사와 스푼 등 숙제를 각각 배정받았다. 약 3시간에 걸친 수업 내용은 크게 두가지로 요약된다. 첫번째는 나무 작업이 주는 즐거움, 두번째는 작업 과정을 통해 배우는 인간사의 지혜다. 즉 이번 수업은 주어진 재료와의 고군분투가 아니라 노작을 통해 나를 발견하는 과정인 것이다. 

 나무 작업의 즐거움은 청각과 촉각 등 다양한 감각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이다. 종류도 다양한 각종 나이프로 빚어내는 소리는 사각사각 재즈처럼 달콤하며 손 끝으로 전해지는 작업물의 감촉이 때론 거칠게 때론 매끄럽게 녹아든다. 표면에 새겨지는 칼맛 또한 일품이다. 처음에 거칠었던 물푸레 나무는 칼질이 더해질수록 바닥은 깊어지고 손잡이는 세련되어지며 쿡사로서의 면모를 다져나간다. 

 스푼 제작은 쿡사에 비해 좀 더 까다로운 과정이다. 산벚나무가 주 재료인데 얼핏 쉬워보이지만 단순한 모양 흉내내기가 아니었다. 욕심이 지나치면 스푼 바닥에 구멍이 뚫리기도 하고 게으르면 거스름이 일어나 사용하기가 영 불편해진다. 면잡기도 무척 까다롭고 손잡이와 스푼 몸체로 이어지는 곡선을 유려하게 살리려 무리하다 목 부분이 부러지는 참사도 발생한다고 한다. 

"이 측면이 어디인지, 후면, 윗면, 아랫면이 어디인지를 규정을 해줘야만 이게 사물이 되는 겁니다. 깎아보니까 어디가 전면인지 모르는 상태로 깎는 사람들이 많아요. 면이 불명확하면 그것은 우리가 사물이라고 규정할 수가 없어요."

 작업에 대한 이야기지만 작업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나무에만 새겨질 이야기는 더더욱 아니다. 우리 삶 속에 새겨넣어야 할 금과옥조다. 차분한 그의 안광은 얼굴 전체를 덮고 있는 반백의 수염, 머리칼과 더불어 부드럽게 빛난다. 

 오랫동안 국내 공영방송사에서 유명다큐 프로그램을 연출했던 선생은 퇴직 후 이곳 팔괴리에 정착하여 팔괴 공작소를 시작하였다. 8년여의 시간이 흐르며 이젠 제법 입소문이 나서 원데이 클래스를 비롯한 여러 강좌에 수강생들이 많은 문의를 해온다. 그에게 공방 운영은 내적 충만함이 가득한 시간들이었다. 여름은 여름대로 겨울은 겨울대로 사계절의 변화와 더불어 자연의 섭리속에 심신이 숙성해가며 자연의 일부가 되었다. 담담하게 지난 시간을 관조하는 그의 미소에서 나무의 인자함이 묻어나지만 작업에 있어서는 확고한 철학과 주관을 가지고 있다.

“안되는 것은 무리하게 정복하려 하면 안됩니다. 거기에 맞는 다른 도구와 방법으로 타협해야죠.” by @ciyeongs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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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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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조(釀造)는 과학이자 맛과 향의 퍼포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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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영훈은 현직 초등학교 교사이다. 올해 경력 15년을 넘어가는 중견 교사인 그는 중학생 시절에 힙합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친구들과 밴드를 결성하여 수차례 공연을 하는 등 가수의 꿈을 키웠었다. 이제는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성실한 직장인으로서 어린시절 동경하던 가수의 꿈을 접고 취미 생활로 힙합을 즐기지만 지금도 그의 실력은 어디서도 빠지지 않는다는 동료 교사의 귀띔이다. 

 그는 취미 부자다. 힙합 외에도 교직을 이어가며 익힌 몇가지 취미가 전문가 수준이라고 하는데 첫 번째는 헬스짱으로 언론의 주목까지 받았다는 것이며 두 번째가 탁월한 낚시 실력이다. 유수의 낚시용품 회사에서 얼리어답터로 앞다투어 모신다는 사실이 그의 실력을 가늠케 해준다. 그리고 세번째는 보통 사람들로서는 이해하기 힘든‘양조(釀造)’이다. 그가 양조의 길로 들어선 계기는 대학시절 교육봉사를 하며 만났던 한 프랑스인 친구때문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외국인에 대한 친절로 그 친구를 도와주다가 어찌어찌 밥을 여러번 같이 먹게되고 막걸리도 한잔 나누며 친해지게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친구가 프랑스로 돌아간 후에도 꾸준히 연락을 하던 중 그의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 선물을 받았다. 그 친구가 사는 프랑스 마을에는 집집마다 대대로 내려오는 양조장이 있는데 친구네 양조장에서 만든 와인을 선물받은 것이다. 가끔 대학 친구들과 마시는 소주나 막걸리 외에는 술에 대해 특별한 관심이 없던 그는 답례품으로 한국의 전통주를 보내기로 결정한다. 

 그런데 문제는 아무리 찾아봐도 답례로 보낼 마땅한 우리 술을 찾지 못한 것이다. 한참을 고민하다 결국 스스로 ‘양조 할 결심’을 하게 되었다. 무엇이든 한번 관심을 갖고 시작한 일에는 끝까지 무섭게 파고드는 기질인 최영훈은 그때부터 관련 교육기관에 다니며 양조에 대한 지식을 쌓아나갔다. 그 과정을 겪으며 전통주 제조 관리사, 증류주 제조 관리사, 전통주 소믈리에 등 관련 자격증도 여럿 따냈다. 그렇게 지난 시간이 벌써 8년을 넘겼으며 이제는 관련 동호회원들과 함께 양조에 대한 지식도 교환하고 서로의 작품을 시음하며 배움의 스펙트럼을 넓혀가고 있다.

 청주나 약주 등 전통주 빚는 과정 중 百洗라고 하는것이 있다. 이는 쌀을 씻을 때 마음가짐을 깨끗이 하여 백번을 씻어낸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지루하고 귀찮았던 그 과정을 반복하는 과정을 통해 최영훈은 점점 마음이 맑아지고 육신이 바로섬을 알게 되었다. 무념 무상의 과정을 거치며 ‘술’이라는 본질에 도달한 것이었다. 그가 생각하는 술의 이치는 무엇일까? 

“일본 사케는 쌀을 60~70% 이상 깎아내서 정밀하게 전분만 남겨 깔끔한 맛을 내는데, 우리나라는 쌀을 깎지 않으니 '백세'를 통해 겉면의 단백질이나 지방 성분을 씻어내는 도정의 역할을 대신하기도 합니다. 일본 사케는 깔끔하게 똑 떨어지는 맛을 미덕으로 치는 반면, 우리나라 전통주는 과일 향, 짚풀 향, 쿰쿰한 헛간 냄새, 된장 향 등 다양한 풍미가 나요. 외국은 과학적으로 연구해서 가장 좋은 효모 하나만 균일하게 배양해 쓰지만, 우리나라 전통주는 자연 속의 다양한 미생물(누룩)을 그대로 사용해요. 장점은 그 지역 고유의 스토리와 맛을 담을 수 있다는 거고, 단점은 만들 때마다 맛이 매번 달라진다는 점이죠. 하지만 와인 빈티지처럼 매년 달라지는 누룩의 맛을 즐기는 재미가 있습니다. 물론 어느 것이 더 좋다라고 논하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양조에 관한 설명에서 그의 두 눈은 선명한 眼光으로 빛난다. 웬만한 일에는 흔들리지 않는 강한 뚝심이다. 

“양조는 미생물에 대해 배우는 과정입니다. 미생물(효모)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토해낸 독이 바로 알콜, 즉 우리가 술이라고 하는 물질입니다. 미생물이 발효하는 과정에서 조용한 시간에 잘 들어보면 특유의 속삭임이 재잘재잘 들려요. 그 소리를 듣다 보면 마음이 평화로워지고 신비로움이 느껴집니다.”

 그가 제조하는 것은 맛의 미학이자 정교한 과학이다. 양조력이 점점 깊어짐에 따라 많은 유혹이 따르지만 아직 본격적인 업으로 삼고 싶지는 않다고 한다. 그는 단지 술과 자신을 빚고 싶을 뿐이다. 그리고 술을 아는 친구들과 같이 마시며 삶의 향기에 취하고 싶을 뿐이다. 

“양조는 과학이자 맛과 향의 퍼포먼스입니다.” by @ciyeongs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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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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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얼 그리 갈래갈래 헤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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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재성지는 여유롭다. 남양주 팔당 곁길 모퉁이를 몇굽이 돌아 도착한 그곳은 한여름의 초록이 가득한 마을 웃자락, 다산 선생의 생가터에 자리잡고 있다. 외형적 규모는 여타 대형 성당에 비하면 소박한 편이지만 그 속에 담긴 평화는 비교할 수 없이 넉넉하여 마음이 아픈이들에게 안식을 전해준다. 

 본당인 도마성전은 한옥으로 지어져 있다. 사무실 건물은 양옥이어서 약간 이질적인 느낌은 있으나 전체적으로 한옥의 흐름을 살렸다. 구역은 크게 3곳으로 나뉘어진다. 도마성전, 화장실, 성가정 안내관, 주차장이 자리한 본당구역, 성인품에 오른 3분(정하상 바오로, 정정혜 엘리사벳, 유조이 체칠리아)과 복자이신 2분(정약종 아우구스티노, 정철상 가롤로)의 일생을 그림으로 모신 성가정 구역, 그리고 성지 사무 일체를 관리하는 사무실 구역이다. 사무실 옆 오솔길쪽으로 자리한 십자가길은 숲에서 불어오는 골바람때문에 주차장쪽 넓은 마당보다 한결 시원한 느낌이다. 이쪽의 십자가 길은 성가정 구역의 평면회화와 달리 환조로 표현되어 또다른 신심을 불러온다. 

 본당(도마성전) 내부 역시 한옥의 구조를 따랐다. 천장의 서까래와 기둥은 흰바탕을 배경으로 노출되어 마치 외갓집 대청마루에 앉아있는 듯 하다. 내부 공간은 그리 넓지 않지만 독서대, 해설대, 사제좌, 감실 등이 제대와 더불어 알맞게 배치되어 아늑한 느낌을 주는데 특히 제대는 끌맛을 살린 나무 질감이 인상적이다. 넓지 않은 성전의 공간적 제약으로 인해 신자석은 비교적 촘촘히 배치되어 있고 전례통로와 측랑 역시 좁은 편이지만 크게 불편한 점은 띄지 않았다.

 필자의 눈에 가장 먼저, 그리고 끝까지 담고싶었던 것은 십자가상이다. 어느 작가의 작품인지는 확인을 못했으나 등신대보다 약간 작은 크기로 양팔을 벌린채 무거운 짐진자들을 품어 안는 형상이다, 지그시 세상을 향한 눈빛은 인자하며 미소는 인류를 향한 무언의 사랑이다. 가장 아랫부분인 발은 ‘십자가’라는 형틀에 매달린 것이 아닌 승천하는 예수를 떠올리게 한다. 즉 이 십자가는 예수상이 아닌 ‘그리스도상’이다. 번민과 고통을 짊어진 예수상이 아닌 하느님의 아들이자 구세주로서 ‘모든 것을 다 이룬’ 그리스도상인 것이다. 

 필자는 헤매고 있다. 답을 찾아, 의미를 찾아 끝없이 방랑하고 있다. 도마성전의 유려한 처마끝과 그리스도상은 그런 필자에게 이렇게 묻고 있다. 

“무얼 그리 갈래갈래 헤매고 있느냐?” by @ciyeongs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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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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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 가기 싫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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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여년 전 처음 사랑니를 뽑을 때였다. 치과에 가기 전 사랑니 발치의 경험이 있던 친구에게서 들었던 리얼하고 무서운 발치 경험담으로 인해 진료실에 들어서기 전부터 긴장되었다. 필자의 사랑니 상태를 살펴본 의사는 “오늘 고생좀 하겠네”라는 덕담(?)과 함께 때론 우악스럽게 때론 잔소리를 섞어 가며 부지런히 손을 놀렸다. 

 소공포로 눈까지 가려진 상황에서 신경을 자극하는 드릴소리, 목구멍으로 꿀렁꿀렁 넘어가는 세척수 등 난공사로 인해 숨쉬기조차 힘든 시간이 지나 치료를 마칠 즈음에는 그야말로 기진맥진해 버렸다. 의사는 지시 사항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는 불량 환자에게 빈정이 상했는지 처음 계획했던 두개가 아닌 한개만 발치 하자며 일정을 마무리 했다. 

 그 때 이후로 치과에 대한 공포심이 생겨난 것 같다. 드릴 소리만 들어도 몸이 움츠려 들고 진료대에 누워 소공포가 얼굴에 덮이면 심장이 쿵쾅거리기 일쑤였다. 한번은 진료대 머리 부분이 아래로 기울자 혈압이 오르고 정신이 아득해져 치료를 멈춰야만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게 공포의 대상인 치과지만 6개월에 한번씩은 꼭 스켈링을 받는다는 나름 철칙이 있었기에 샘치과에 예약을 했다. 그동안 고통을 안겨준 10여년 단골 치과를 등지고 뭔가 다르리라는 확신이 든 샘치과 윤규승 원장을 믿어보기로 한 것이다. 

 일단 샘 치과는 실내 분위기가 매우 편안하다. 조명은 어둡지도, 밝지도 않고 아늑하며 조용한 음악이 흐르는 톨보이 스피커를 접수대 좌우에 배치해 시각적 안정감을 높였다. 의자에 앉아 등을 벽에 기대고 눈을 감고 있으면 좌우 가습기 물소리가 음악과 더불어 마음에 휴식을 더해준다. 병원의 전체적인 레이아웃은 가로형이다. 접수대가 가운데에 배치되어 접수대를 중심으로 진료실이 학의 날개처럼 좌우로 감싼 형태이며 촬영실 등 기타 시설이 뒤쪽으로 자리잡고 있다. 진료실은 대부분 환자가 창밖을 볼 수 있는 구조여서 치료를 기다리는 동안 멍하니 지나가는 자동차와 하늘 등을 바라볼 수 있다. 

 잠시 후 인삿말과 함께 윤원장이 들어선다. 모니터에 재생된 엑스레이 사진을 하나하나 설명하며 치아 상태, 앞으로 해야 할 치료 등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체크하는데 지루함이나 군더더기가 없이 명쾌하다. 이는 평상시 그의 언행에서도 드러나는 특징으로 어떻게든 상대방을 설득(이라 쓰고 협박이라 말하는)하려는 어떤 의사와는 다르게 환자의 마음에 조용히 스며든다. 즉 필요없는 치료는 지양하며 가급적이면 최대한 원래 치아를 살려서 오랫동안 쓸 수 있도록 치료의 프로세스를 환자와 함께 정하는 것이다. 

 치료 과정도 대박이다! 그동안 꾸준히 다녔던 모 치과병원에 비하면 이건 너무나도 행복하다. 입이 작은 편인 필자는 치위생사의 “아” 한마디가 두렵기만 하다. 최대한 입을 벌리느라 치료가 끝나면 눈물이 핑 돌고 턱이 제대로 다물어지지도 않기가 다반사인데 여기 치위생사는 “아”가 아닌 “어”를 요구 한다. 조금만 벌려도 문제없이 진료를 보니 이처럼 고마울데가 없는것이다. 진료대의 각도도 지나치게 기울이지 않는 등 환자를 위한 세심한 마음 씀씀이가 돋보인다. 게다가 간간이 충치의 원인이나 올바른 칫솔질에 대한 설명을 곁들여주니 그저 황송할 따름이다. 처음 쿵쾅거리던 심장은 이제 천천히 천천히 안정을 되찾고 편안한 마음으로 오늘 있었던 일, 앞으로 해야할 일 등이 머릿속으로 지나간다. 굳어 있던 몸과 마음이 살살 녹는다. 

 하남 푸른교육 공동체의 공동 대표를 맡아 환경관련 사업도 꾸준히 이어가는 윤원장은 여러모로 별(star)스런 분이다. 병원 꾸려가기도 바쁜 시간을 쪼개어 고니학교를 비롯하여 맹꽁이학교, 산곡천물새학교 등을 운영하며 대통령 표창까지 받았다. 그러고도 모자라는지 생태교육센터, 환경교육센터까지 만들어 운영하느라 몸이 열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다. 그래서일까...윤원장의 치료 과정은 여타 의사와 달리 치아의 아픈곳을 다독이고 평화를 심으며 환자들의 건강한 구강생태를 가꾸어 나가는 여정이다. 

 치과 가기 싫죠? 안심하셔도 된다. 여기 샘치과 윤원장을 찾으면 입안의 평화를 찾으리라... by @ciyeongs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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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는 실패를 경험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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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남에는 임숙자가 있다. 사시사철 산이며 하천이며 종횡무진 누비는 그의 공식 직함은 생태교육자이다. 그러나 한 단어로 그를 축약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만큼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임숙자, 그는 어떤 사람일까?

 대학 졸업 후 처음 시작한 일은 미술교사이다. 공교육에서 아이들을 지도하던 그가 돌연 학교를 뛰쳐나온 이유는 획일화된 한국의 미술교육 때문이었다. 

“아이들이 일정한 패턴 안에서 일정한 도구로만 작업하는 거에요. 그래서 과감하게 학교에서 뛰쳐나와 버렸어요.”

 과거 공직자로서 회의감을 느꼈던 그의 말 한마디에 현재 한국 공교육의 맹점을 찌르는 가시가 숨겨져 있다. 예술교육은 어쩌면 학교에서 학생들의 다양성과 감성을 키우는 마지막 보루같은 역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연(?)의 역할에서 벗어난 채 편의성으로 획일화된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임숙자는 학생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말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궁무진하다. 그래서 자신만의 학교를 세우고 많은 어린이들과 만나고 있다. 

 생태 수업 중 아이들에게 곤충 이야기, 식물 이야기를 맛깔스럽게 전할 때 그의 눈은 순수함과 열정으로 반짝인다. 자연생태계에 관련된 많은 일을 하다보니 지식의 확장을 절감하여 대학원에서 관련된 공부를 하였고 지금도 쉼없이 공부하여 내공을 쌓아가는 중이다. 어쩌다 우리 주변의 생태에 관한 그의 말 한마디라도 들어보면 흔히 보면서도 무심코 지나쳤던 자연의 섭리에 감탄하게 된다. 아침에 출근해서 듣곤 했던 이름 모를 새의 지저귐에 궁금했던 새 이름을 듣고, 혹은 지천에 피어나는 풀꽃의 이름과 특징에 대한 설명을 듣고 ‘아하! 그렇구나’ 감탄사를 연발하게된다. 

 회사의 대표로서, 생태 이야기꾼으로서 그가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 특히 우리나라 토종 생태계를 어지럽히는 교란식물을 제거하기 위해 자원봉사자들과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뜨거운 여름날 생태교란식물을 제거하기 위해 굵은 땀방울을 흘리는 그의 활동보고를 접할 때 마다 감사의 마음과 함께하지 못하는 죄책감이 늘 교차한다. 임숙자 대표님, 늘 응원합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셔요. 

“학교는 기본적인 지식 외에 여러 가지를 경험하며 연습하고, 실패를 경험해야 하는 곳입니다.” by @ciyeongs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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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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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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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이 분다. 원주 산골 거돈사지에 시원한 봄바람이 분다. 저녁햇살에 맛깔스럽게 버무린 늦봄바람에 취하니 한참을 서성이며 발걸음을 떼기가 쉽지 않았다. 이토록 신선하고 맑은 바람을 언제쯤 마셔보았던가...사방은 연초록으로 일렁이는 수풀소리 뿐, 적막한 침묵만이 조근조근 대화중이다. 

 작품들은 소란스럽지 않게 주변 풍경에 스며든다. 자연의 일부인양 이질감 없이 평화롭게 관람객을 맞아주었다. 오랜세월 흙과 나무라는 매질을 통해 삶의 의미를 탐구해온 정화석 선생의 도조작업과 김진성 선생의 나무작업들이 서로 어우러지며 공간속에서 바람의 노래를 부른다. 마치 늘 그래왔던것 마냥... 나무와 흙은 異形同質이다. 흙은 나무를 키우고 나무는 죽어서 흙으로 돌아가는 같은 영혼을 소유한 관계...서로가 서로를 보듬어주던 관계에서 한쪽은 불속에 응집되어 다시 태어났지만 여전히 서로를 그리워한다. 마주보며 또는 나란히 같은곳을 바라보며 바람의 노래를 부른다. 

언제쯤이면 삶의 이유를 알 수 있을까... by @ciyeongs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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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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