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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months ago
인간 안의 무한의 운명이 작은 쇳조각 하나에 달려 있다. 그것이 인간 조건이며, 공간과 시간이 그 원인이다. 그 작은 쇳조각을 조금만 움직여도 인간 안의 무한은 찢기는 아픔과 함께 순식간에 날 끝의 한 점이나 손잡이의 한 점으로 축소된다. 한순간에 존재 전체가 상처 입고, 신을 받아들일 자리가 완전히 사라진다. 심지어 그리스도마저도 신에 대해서 빼앗김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그래야 그리스도가 인간일 수 있다. 존재 전체가 신을 빼앗긴 상태가 된 것이다. 이제 어떻게 더 나아갈까? 그러고 나면 부활뿐이다. 거기까지 가기 위해 날카로운 쇳조각의 차가움을 겪어야 한다.

쇳조각이 닿을 때, 그리스도가 그랬던 것처럼 신에게서 분리되었다고 느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그때의 신은 다른 신이다. 순교자들은 그렇게 느끼지 않았고, 그때의 신은 다른 신이었다. 순교자가 되지 않는 편이 나았을지 모른다. 순교자들이 신 안에서 고통 받고 죽어가며 기쁨을 느낄 때, 그 신은 이후 로마 제국이 공인한 신, 말살과 함께 강요된 신에 가깝다.

이 세계와 삶이 아무런 가치를 갖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악의 존재를 증거로 내세워봤자 말이 안 된다. 세계와 삶이 아무런 가치를 갖지 않는다면 악이 우리에게서 무엇을 앗아가겠는가.

불행 속에서 겪는 고통과 타인에 대한 연민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할수록 더욱 순수하고 강렬해진다. 기쁨이 없는 사람에게서 고통이 무엇을 앗아가겠는가.

우리가 기쁨의 충만함을 지닐 때 고통과 기쁨의 관계는 배고픔과 먹을 것의 관계와 같다.

기쁨을 통해 실재의 계시를 경험한 뒤에야 비로소 고통속에서 실재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러지 않으면 삶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그저 악몽일 뿐이다.

무이고 빈자리인 고통 속에서 더욱 충만한 실재를 발견할 것.

마찬가지로, 죽음을 사랑하기 위해 삶을 깊이 사랑할 것.

-중력과 은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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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On: December 21st 2025, 03:40 am
인간 안의 무한의 운명이 작은 쇳조각 하나에 달려 있다. 그것이 인간 조건이며, 공간과 시간이 그 원인이다. 그 작은 쇳조각을 조금만 움직여도 인간 안의 무한은 찢기는 아픔과 함께 순식간에 날 끝의 한 점이나 손잡이의 한 점으로 축소된다. 한순간에 존재 전체가 상처 입고, 신을 받아들일 자리가 완전히 사라진다. 심지어 그리스도마저도 신에 대해서 빼앗김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그래야 그리스도가 인간일 수 있다. 존재 전체가 신을 빼앗긴 상태가 된 것이다. 이제 어떻게 더 나아갈까? 그러고 나면 부활뿐이다. 거기까지 가기 위해 날카로운 쇳조각의 차가움을 겪어야 한다.

쇳조각이 닿을 때, 그리스도가 그랬던 것처럼 신에게서 분리되었다고 느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그때의 신은 다른 신이다. 순교자들은 그렇게 느끼지 않았고, 그때의 신은 다른 신이었다. 순교자가 되지 않는 편이 나았을지 모른다. 순교자들이 신 안에서 고통 받고 죽어가며 기쁨을 느낄 때, 그 신은 이후 로마 제국이 공인한 신, 말살과 함께 강요된 신에 가깝다.

이 세계와 삶이 아무런 가치를 갖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악의 존재를 증거로 내세워봤자 말이 안 된다. 세계와 삶이 아무런 가치를 갖지 않는다면 악이 우리에게서 무엇을 앗아가겠는가.

불행 속에서 겪는 고통과 타인에 대한 연민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할수록 더욱 순수하고 강렬해진다. 기쁨이 없는 사람에게서 고통이 무엇을 앗아가겠는가.

우리가 기쁨의 충만함을 지닐 때 고통과 기쁨의 관계는 배고픔과 먹을 것의 관계와 같다.

기쁨을 통해 실재의 계시를 경험한 뒤에야 비로소 고통속에서 실재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러지 않으면 삶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그저 악몽일 뿐이다.

무이고 빈자리인 고통 속에서 더욱 충만한 실재를 발견할 것.

마찬가지로, 죽음을 사랑하기 위해 삶을 깊이 사랑할 것.

-중력과 은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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