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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days ago
연작 18편 - 《시간이 머무는 플랫폼》

《시간이 머무는 플랫폼》

― 시간과 도시, 비와 기억 : 18편

도시의 끝에서
작은 기차역을 발견했다.

오래된 시계는
저녁 여섯 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플랫폼 끝에는
낮에 내린 비가
아직 마르지 않은 채 고여 있었다.

나는 아무 열차도 기다리지 않으면서
그곳에 한참 서 있었다.

철길 위로 바람이 불었다.

녹슨 레일의 냄새와
멀리서 들려오는 기적 소리,

그리고 어디론가 떠나려는 사람들의
낮은 목소리가 섞여 흘렀다.

문득 생각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플랫폼 위에서 보냈을까.

누군가를 기다리며,
누군가를 떠나보내며,

끝내 도착하지 않는 것을
오래도록 바라보면서.

한때 나에게 모든 역은
이별의 장소였다.

문이 닫히는 순간과
멀어지는 창문,

손을 흔들던 사람의 얼굴이
점점 작아지는 풍경.

그런 것들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 있었다.

그래서 나는
떠나는 열차를 싫어했다.

누군가를 데려가는 것들은
언제나 잔인하다고 생각했다.

그때였다.

건너편 플랫폼으로
한 대의 열차가 들어왔다.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하나둘 내렸다.

누군가는 커다란 여행 가방을 끌었고,
누군가는 휴대전화를 보며 웃었으며,

누군가는 기다리던 사람을 발견하고
서둘러 달려갔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이상하게도
마음이 조금 따뜻해졌다.

같은 역에서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돌아오고,

또 누군가는
처음 보는 도시를 만나고 있었다.

그제야 알았다.

기차역은
이별만을 위해 존재하는 곳이 아니었다.

떠나는 사람의 뒷모습과
도착하는 사람의 첫걸음이

같은 시간 위에
나란히 놓이는 장소였다.

어쩌면 삶도
그와 닮았을 것이다.

내게는 끝이었던 순간이
누군가에게는 시작이었고,

오래도록 슬퍼했던 계절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가장 아름다운 기억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벤치에 앉았다.

머리 위 전광판에서는
도착과 출발을 알리는 글자들이
번갈아 빛나고 있었다.

그 아래에서
문득 오래전의 네가 떠올랐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헤어졌던 날.

나는 네가 떠나는 것만 보느라
그 뒤에 남겨진 나를
바라보지 못했다.

그날 이후에도
내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었는데,

나는 한참 동안
멈춰 있는 사람처럼 살았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누군가의 떠남이
나의 끝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걸.

열차가 떠난 뒤에도
플랫폼에는 불이 켜지고,

사람들이 돌아간 뒤에도
시계는 다음 시간을 향해 움직인다.

그리고 언젠가는
또 다른 열차가 도착한다.

저녁빛이 조금씩 옅어졌다.

플랫폼 지붕 아래로
작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손을 내밀었다.

차가운 물방울 하나가
손바닥 위에 내려앉았다.

오래전이었다면
이 비를 너의 이름으로 불렀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저 저녁의 비라고 생각했다.

오늘 이 역에 내리는,
오늘의 비.

멀리서 다시
기적 소리가 들렸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번에는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어디론가 서둘러 떠나지도 않았다.

그저 플랫폼 끝에 서서
다가오는 열차의 불빛을 바라보았다.

어둠 속에서
두 개의 작은 빛이
점점 선명해지고 있었다.

나는 문득 웃었다.

시간은
떠나는 것만 가르쳐 주지 않았다.

다시 도착하는 것,

새로운 문이 열리는 것,

그리고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는 순간에도
기꺼이 다음 시간을 맞이하는 법을
조금씩 알려 주고 있었다.

열차가 천천히 멈췄다.

문이 열렸다.

나는 잠시
그 안의 따뜻한 불빛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한 걸음 내디뎠다.

어디까지 가게 될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괜찮았다.

모든 여행이
목적지를 알고 시작되는 것은 아니니까.

창가에 앉자
빗방울이 유리를 타고 흘렀다.

플랫폼의 불빛이
조금씩 뒤로 멀어졌다.

나는 그 풍경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어떤 끝은
우리에게서 무언가를 빼앗아 가지만,

어떤 끝은
비로소 다음 문을
열어 주기도 한다고.

기차는 어둠 속으로 달렸다.

창밖에는
아직 가 보지 않은 도시의 불빛들이
하나둘 나타나고 있었다.

나는 더 이상
떠나온 곳을 세지 않았다.

대신 앞으로 만나게 될
수많은 역의 이름을 상상했다.

그리고 그날 처음,

시간이 나를 데려가는 곳이
두렵지 않았다.

#소통 #1일1글 #팔로우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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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On: October 14th 2026, 03:55 am
연작 18편 - 《시간이 머무는 플랫폼》

《시간이 머무는 플랫폼》

― 시간과 도시, 비와 기억 : 18편

도시의 끝에서
작은 기차역을 발견했다.

오래된 시계는
저녁 여섯 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플랫폼 끝에는
낮에 내린 비가
아직 마르지 않은 채 고여 있었다.

나는 아무 열차도 기다리지 않으면서
그곳에 한참 서 있었다.

철길 위로 바람이 불었다.

녹슨 레일의 냄새와
멀리서 들려오는 기적 소리,

그리고 어디론가 떠나려는 사람들의
낮은 목소리가 섞여 흘렀다.

문득 생각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플랫폼 위에서 보냈을까.

누군가를 기다리며,
누군가를 떠나보내며,

끝내 도착하지 않는 것을
오래도록 바라보면서.

한때 나에게 모든 역은
이별의 장소였다.

문이 닫히는 순간과
멀어지는 창문,

손을 흔들던 사람의 얼굴이
점점 작아지는 풍경.

그런 것들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 있었다.

그래서 나는
떠나는 열차를 싫어했다.

누군가를 데려가는 것들은
언제나 잔인하다고 생각했다.

그때였다.

건너편 플랫폼으로
한 대의 열차가 들어왔다.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하나둘 내렸다.

누군가는 커다란 여행 가방을 끌었고,
누군가는 휴대전화를 보며 웃었으며,

누군가는 기다리던 사람을 발견하고
서둘러 달려갔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이상하게도
마음이 조금 따뜻해졌다.

같은 역에서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돌아오고,

또 누군가는
처음 보는 도시를 만나고 있었다.

그제야 알았다.

기차역은
이별만을 위해 존재하는 곳이 아니었다.

떠나는 사람의 뒷모습과
도착하는 사람의 첫걸음이

같은 시간 위에
나란히 놓이는 장소였다.

어쩌면 삶도
그와 닮았을 것이다.

내게는 끝이었던 순간이
누군가에게는 시작이었고,

오래도록 슬퍼했던 계절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가장 아름다운 기억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벤치에 앉았다.

머리 위 전광판에서는
도착과 출발을 알리는 글자들이
번갈아 빛나고 있었다.

그 아래에서
문득 오래전의 네가 떠올랐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헤어졌던 날.

나는 네가 떠나는 것만 보느라
그 뒤에 남겨진 나를
바라보지 못했다.

그날 이후에도
내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었는데,

나는 한참 동안
멈춰 있는 사람처럼 살았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누군가의 떠남이
나의 끝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걸.

열차가 떠난 뒤에도
플랫폼에는 불이 켜지고,

사람들이 돌아간 뒤에도
시계는 다음 시간을 향해 움직인다.

그리고 언젠가는
또 다른 열차가 도착한다.

저녁빛이 조금씩 옅어졌다.

플랫폼 지붕 아래로
작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손을 내밀었다.

차가운 물방울 하나가
손바닥 위에 내려앉았다.

오래전이었다면
이 비를 너의 이름으로 불렀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저 저녁의 비라고 생각했다.

오늘 이 역에 내리는,
오늘의 비.

멀리서 다시
기적 소리가 들렸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번에는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어디론가 서둘러 떠나지도 않았다.

그저 플랫폼 끝에 서서
다가오는 열차의 불빛을 바라보았다.

어둠 속에서
두 개의 작은 빛이
점점 선명해지고 있었다.

나는 문득 웃었다.

시간은
떠나는 것만 가르쳐 주지 않았다.

다시 도착하는 것,

새로운 문이 열리는 것,

그리고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는 순간에도
기꺼이 다음 시간을 맞이하는 법을
조금씩 알려 주고 있었다.

열차가 천천히 멈췄다.

문이 열렸다.

나는 잠시
그 안의 따뜻한 불빛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한 걸음 내디뎠다.

어디까지 가게 될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괜찮았다.

모든 여행이
목적지를 알고 시작되는 것은 아니니까.

창가에 앉자
빗방울이 유리를 타고 흘렀다.

플랫폼의 불빛이
조금씩 뒤로 멀어졌다.

나는 그 풍경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어떤 끝은
우리에게서 무언가를 빼앗아 가지만,

어떤 끝은
비로소 다음 문을
열어 주기도 한다고.

기차는 어둠 속으로 달렸다.

창밖에는
아직 가 보지 않은 도시의 불빛들이
하나둘 나타나고 있었다.

나는 더 이상
떠나온 곳을 세지 않았다.

대신 앞으로 만나게 될
수많은 역의 이름을 상상했다.

그리고 그날 처음,

시간이 나를 데려가는 곳이
두렵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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