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盛賢 성현
Traveler | Writer | Mission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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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첫 눈이 왔어요

#릴스타그램 #릴스댄스 #reels #reelsinstagram by @piterdiary
49
3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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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아홉 서른여섯 💃🕺🧑‍🩰 by @piterdiary
8
3 day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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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저우이치엔 먹고십다.. 🍢 by @piterdi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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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day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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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으로 사는 집

오래도록 나는 
다른 사람의 집에서 잘 지내는 법을 먼저 배웠다.

문이 어디에서 삐걱거리는지, 
어느 시간에는 조용히 걸어야 하는지, 
어떤 말을 하면 공기가 차가워지는지.

그런 것들을 빨리 알아차리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꽤 오래 
잘 지낼 수 있었다.

따뜻했던 저녁도 있었고, 
같이 웃었던 날도 있었고, 
창문을 열면 좋은 바람이 들어오던 계절도 있었다.

그 시간들이 거짓이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곳에서 분명 사랑했고, 
사랑받았고, 
때로는 정말 행복했다.

다만 이상하게 
어디에 있든 내 신발을 벗어두는 자리를 
자꾸 확인해야 했다.

여기에 두어도 되는지,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도 되는지, 
내가 너무 많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건 아닌지.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집 안에 살고 있으면서도 
계속 손님처럼 살고 있었다.

나는 그게 내 문제라고 생각했다.

조금 덜 예민했으면, 
조금 더 잘 맞췄으면, 
조금만 더 참았으면 
어디에서든 편하게 살 수 있었을 거라고.

그리고 아마 틀린 말만은 아닐 것이다.

내가 세게 닫아버린 문도 있었고, 
치우지 않은 것들도 있었고, 
화를 내며 깨뜨린 물건도 있었다.

그 흔적까지 없었던 일로 만들고 싶지는 않다.

다만 이제는 
깨뜨린 물건 앞에 평생 앉아서 
내가 나쁜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보다,

다음에는 조금 천천히 내려놓는 법을 
배우고 싶어졌다.

그 생각이 드는 데 꽤 오래 걸렸다.

요즘 나는 작은 집 하나를 짓는 중이다.

아직 벽도 조금 삐뚤고 
창문의 높이도 제각각이고 
어떤 방은 무엇에 쓸지도 정하지 못했다.

그래도 이곳에서는 
내 신발을 어디에 벗어둘지 
아무에게도 묻지 않는다.

내가 웃고 싶으면 웃고, 
조용하고 싶으면 조용하고, 
문을 열고 싶으면 열 수 있다.

신기하게도 
내 집을 가지기 시작하자 
다른 사람의 집도 조금 더 잘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머물기 위해 
누군가의 벽을 허물 필요도 없고,

누군가를 내 곁에 두기 위해 
그 사람의 방을 빼앗을 필요도 없다는 것을.

각자의 집을 가진 사람들이 
가끔 서로의 식탁에 앉는 것.

어쩌면 내가 오래 원했던 사랑은 
그런 모습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요즘 나는 아주 조금씩 행복해지고 있다.

아니,

어쩌면 처음으로 
행복을 빌려 쓰지 않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아침마다 내 창문을 열고, 
내가 마실 물을 올리고, 
오늘 누군가에게 건넬 마음을 조금 준비한다.

그렇게 하루를 산다.

완벽하게 고쳐진 집은 아니지만 
이제는 이곳을 버리고 싶지 않다.

그리고 매일 조금씩 
이 집에서 사랑하며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다. by @piterdiary
0
7 day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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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왜 꼭 끝에 가서야 알게 될까.

왜 무언가를 잃을 것 같아야
사랑한다고 말하고,
왜 다시는 볼 수 없을 것 같아야
그제야 제대로 바라보게 될까.

가끔은 그게 이상하다.

꼭 극단적인 순간이어야만
무엇이 중요한지 알 수 있는 걸까.

사실 나는
그런 순간을 너무 많이 느껴왔다.

끝날 것 같은 순간,
무너질 것 같은 순간,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것 같은 순간.

그래서 이제는
죽음의 문턱 같은 감각을
그만 느끼고 싶을 때도 많다.

조금은 평범하게 살고 싶고,
아무 일 없이 하루를 보내고 싶고,
큰 깨달음 없이도 웃고 싶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그런 순간들은 자꾸 내 삶의 모양을 바꿔놓았다.

사람을 더 오래 보게 했고,
사랑한다는 말을 조금 덜 아끼게 했고,
지금 내 옆에 있는 것이 영원하지 않다는 걸 알게 했다.

그래서 나는 이제
죽음을 가까이 두고 살고 싶은 게 아니라,

이미 충분히 가까이 와 있었던 그 감각을
삶 쪽으로 돌려놓고 싶다.

무엇을 잃을까 봐 두려워하는 대신
지금 무엇을 사랑할지 생각하고,

언젠가 끝날 것을 미리 슬퍼하는 대신
있는 동안 더 잘 바라보고 싶다.

더 이상 큰 충격이 나를 가르치지 않아도 되었으면 좋겠다.

작은 하루 하나,
평범한 대화 하나,
함께 먹는 밥 한 끼만으로도

아, 이게 중요한 거구나.

알아차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미 너무 많이 배웠으니까.

이제는
죽음의 문턱이 아니라
삶의 한가운데에서 깨닫고 싶다. by @piterdiary
1
22 day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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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갈 망했어요 그래도 기록 할게요 2일차 나아진 선스키를 기대해주세요 by @piterdiary
6
22 day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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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장

사람들은 가끔
같은 집에 살기 위해 담장을 높인다.

밖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저것은 우리 것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안쪽의 사람들은 조금 더 가까워진다.

신기한 일이다.

같은 식탁에 앉아도 쉽게 친해지지 않던 사람들이
담장 밖을 함께 바라보는 순간
금세 한편이 된다.

누군가를 향해 손가락을 뻗는 일은
서로의 손을 잡는 것보다 쉬운가 보다.

그래서 어떤 마을은
사랑보다 경계로 오래 유지된다.

문을 만드는 대신 벽을 만들고,
창문을 내는 대신 표지판을 세운다.

들어오지 말 것.
닮지 말 것.
섞이지 말 것.

그러면 안쪽은 잠깐 안전해 보인다.

그런데 오래 바라보면
이상한 것이 하나 보인다.

담장이 높아질수록
밖의 얼굴은 보이지 않고,
안의 얼굴도 점점 굳어진다.

누가 먼저 돌을 던졌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모두의 손에는 돌 하나씩이 들려 있다.

나는 가끔 그런 마을을 지나며 생각한다.

저 사람들은 정말 집을 지키고 있는 걸까.
아니면 서로가 무너지지 않기 위해
밖에 있는 누군가를 계속 필요로 하는 걸까.

한 사람을 미워하면
여럿이 하나가 되는 일은 생각보다 쉽다.

하지만 한 사람을 사랑하려면
그 사람의 이야기를 오래 들어야 한다.

왜 저기에 서 있는지,
왜 저런 옷을 입었는지,
왜 우리와 다른 노래를 부르는지.

그걸 듣다 보면
우리가 세워놓은 선이 조금 흐려진다.

그래서 사랑은 불편하다.

돌을 내려놓아야 하고,
담장 가까이 가야 하고,
가끔은 문까지 열어야 한다.

어쩌면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밖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문을 열었을 때 달라질 우리 자신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담장을 잘 쌓는 마을보다
의자를 하나 더 내어놓는 집이 좋다.

누가 올지 몰라도
일단 자리를 비워두는 집.

서로 같은 것을 미워해서 가까워지는 사람들이 아니라
같은 불빛 아래 오래 앉아 있다가
조금씩 서로의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들.

나는 그런 마을에
살고 싶다. by @piterdiary
0
25 day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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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끔 기독교가 너무 빨리 세상을 둘로 나누는 게 안타깝다.
이건 맞고 저건 틀리고,
이건 우리고 저건 너희고,
이건 거룩하고 저건 세속이고.
할로윈이 있으면 우리는 홀리윈을 만들고,
세상에 어떤 문화가 생기면 그것과 닮지 않은 ‘기독교 버전’을 다시 만든다.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신앙을 지키고 싶고,
다른 가치를 보여주고 싶고,
우리 아이들에게 더 좋은 것을 주고 싶은 마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가끔은 그 방식이 너무 급하다.
무엇이 다른지 오래 들여다보기보다
먼저 선을 긋고,
그 선 안에 우리를 넣고,
밖에 있는 것을 경계한다.
나는 그게 조금 안타깝다.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은데.
사람도 그렇다.
누군가를 한 단어로 설명할 수 없고,
어떤 문화도 한 장면만 보고 다 알 수 없고,
어떤 삶도 선과 악으로 깔끔하게 나뉘지 않는다.
나 역시 내 안에 모순이 많다.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세상의 많은 것들을 좋아하고,
선교사로 살면서 여행도 좋아하고,
사람을 사랑하면서 사람 때문에 지치기도 한다.
그래서 더 이분법적인 언어가 불편한 것 같다.
어쩌면 신앙은
세상과 얼마나 다르게 보이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세상 안에서 얼마나 다르게 사랑하느냐의 문제 아닐까.
‘너희는 저거, 우리는 이거’라고 말하는 것보다
그곳에 들어가 사람을 만나고,
왜 그런 문화가 생겼는지 듣고,
그 안에 있는 외로움이나 욕망이나 즐거움까지 오래 바라보는 것.
그게 더 어려운 일이고,
어쩌면 더 필요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기독교가 세상과 구별되지 말자는 말을 하고 싶은 게 아니다.
오히려 정말 구별되었으면 좋겠다.
다만 그 구별이
이름을 바꾸고, 행사를 하나 더 만들고, 선을 하나 더 긋는 방식이 아니라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 드러났으면 좋겠다.
조금 덜 판단하고,
조금 더 듣고,
조금 더 오래 곁에 있는 방식으로.
그래서 가끔은 그런 기획들을 보면
화가 난다기보다 조금 슬프다.
우리가 가진 것이 정말 좋은 소식이라면
굳이 세상을 반대편에 세워야만 빛날 필요는 없을 텐데.
우리가 정말 다른 것을 가지고 있다면
그 다름은 이름보다 삶에서 먼저 보일 테니까.

그냥 한줄요약 내가 존나 창의적이지 못하다 by @piterdiary
3
a month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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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질투할 때가 있다.
누군가를 시기하기도 하고, 먹는 것 앞에서 절제가 무너질 때도 있다.

그런 이야기를 우리는 꽤 어렵게 꺼낸다.

“나는 질투하는 사람이야.”
“나는 시기하는 사람이야.”
“나는 탐욕스러운 사람이야.”

이렇게 자신을 소개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우리는 그것을 나의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질투는 내가 느끼는 감정이고,
탐욕은 내가 반복해서 넘어질 수 있는 욕망이고,
시기는 내가 돌아보고 다루어야 할 마음이지
그것 하나로 나라는 사람 전체가 설명되지는 않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떤 문제 앞에서는
사람의 삶 전체를 하나의 단어로 부르고 싶어 한다.

한 사람이 누구를 사랑하는지,
어떤 욕망과 고민을 가지고 살아가는지,
어떤 이름으로 자신을 이해하고 있는지를 보고
그것이 곧 그 사람의 전부인 것처럼 말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죄를 이야기하는 것과
사람을 정죄하는 것의 경계가 흐려진다.

죄가 무엇인지 묻는 일은 필요하다.

나 역시 내 안의 욕망과 질투와 교만을 계속 돌아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더 어려운 질문은 그다음이다.

죄를 발견했다고 해서
그 사람의 존재까지 죄라고 부를 수 있는가.

나는 질투하지만
질투라는 정체성으로 살아가지는 않는다.

나는 욕심을 부리지만
욕심이라는 이름이 나의 전부는 아니다.

사람은 언제나 자신이 잘한 일보다 크고,
자신이 잘못한 일보다도 크다.

그래서 누군가를 바라볼 때
그 사람에게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찾아내는 것보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먼저 바라보는 일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예수님이 사람을 만나셨던 장면들을 떠올리면 더욱 그렇다.

사람들은 누군가의 행위와 과거와 평판을 먼저 보았지만,
예수님은 그 사람에게 다가가 이름을 부르고 이야기를 들으셨다.

죄를 가볍게 여기셨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by @piterdiary
0
a month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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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던 어른이 되었나요? 

존나 네~~~~~~ by @piterdiary
3
2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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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한국에 사는 이유 by @piterdiary
6
2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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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 완벽 💯 by @piterdiary
2
2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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