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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읽고, 말을 새기고, 마음을 가꾸고, 숲을 노래하고, 살림을 짓고, 사랑을 심는, 스스로 푸르게 피어나는 길을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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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읽는 나 : 말밑
―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숲노래·최종규, 철수와영희, 2025.3.28.)

예부터 우리말은 “아 다르고 어 다르다”라 했다. ‘ㅏ’를 가리키는 ‘아’이면서 ‘ㅓ’를 가리키는 ‘어’인데, 이는 “나 다르고 너 다르다”라는 밑뜻이다. 우리는 누구나 ‘사람’으로서는 똑같은 숨결이되, ‘나·너’로는 다른 숨빛이라는 속뜻이다. 아기를 낳는 어버이는 ‘어버이’라는 이름으로 하나이되, ‘어머니(엄마)’하고 ‘아버지(아빠)’라는 이름으로 나누면서 다르다. 어버이가 낳아서 ‘아이’이지만, 모든 아이는 다 다르다. ‘다’하고 ‘더’는 다르다. ‘맞다’하고 ‘멎다’는 다르다. ‘감다’하고 ‘검다’는 다르다. 그렇지만 우리말은 ‘ㅏㅓㅗㅜ’로 셈여름을 가른다. ‘단단·든든’이 있고, ‘방긋·벙긋·봉긋·붕긋·빙긋’이 있다. ‘산들·선들’이 있고 ‘한들·흔들’이 있다. ‘하하·허허·호호·후후·히히’처럼 홀소리를 어찌 내는가에 따라서 크기나 결이나 길이 다르다.

말을 이루는 밑이라서 ‘말밑’이다. 밑이 있어야 밑돌을 놓고서 기둥을 세우고 들보를 지르고는 서까래를 깔아서 지붕을 올린다. 모름지기 언제나 밑부터 마련한다. 밑이 없으면 집을 못 세운다. 밑이 없이 기둥부터 세우려면 폭 빠진다. 언제나 차근차근 하나하나 다지고 쌓고 일구기에 ‘집’이요, 바로 집에서 ‘짓’고 ‘지며리’ 어울려서 ‘지내’니 ‘즈믄(1000)’ 길을 ‘즐겁’게 살아간다.

우리는 예부터 누구나 스스로 말을 지었다. “누구나 스스럼없이 삶자리에서 수수하고 투박하게 지은 삶말”이라서 ‘사투리’이다. 남이 만들어 주는 말이 아니라, ‘나’부터 짓고, ‘너’도 나란히 짓기에 사투리이다. 사투리는 집말부터 비롯하고, 마을말과 고을말과 고장말과 나라말로 뻗는다. 모든 말은 그저 ‘사투리’이다. 그리고 모든 사투리는 손수 집밥옷을 짓는 누구나 스스로 지었다. 그렇기에 글이 없이 말로 살아온 지난날 사람은 글뿐 아니라 책이 아예 없더라도 늘 즐겁게 이 삶을 누리는 길을 걸었다.

삶을 짓는 살림을 꾸리려면 밑자락부터 가꿀 노릇이듯, 글을 쓰거나 말을 하려면 ‘밑글’과 ‘밑말’부터 다질 노릇이다. 그냥그냥 찾기(네이버·국어사전 검색)만 해서는 말과 글을 배우거나 익히지 못 한다. 이런 얼거리로 본다면, 우리는 우리말 밑자락인 뿌리부터 짚고 새길 노릇인데, 정작 어린이집도 어린배움터(초등교육)도 푸른배움터(중등교육)도 열린배움터(대학교육)도 말밑(국어 어원)을 못 다루거나 안 다룬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은 말글지기(사전편찬자)로서 1994해부터 일군 땀방울을 2025해에 매듭을 작게 지은 꾸러미이다. 모든 우리말 말밑을 다루자면 훨씬 오래 걸리기에 단출하게 여미었다. 이 작은 꾸러미부터 이웃하고 나눌 수 있으면, 이 작은 꾸러미에 담은 낱말부터 찬찬히 나누고 익히면서 “누구나 스스로 우리말을 배우고 익혀서 알아가고 노래하는 실마리를 풀”리라 본다.

낱말을 많이 외워야 말을 잘 하거나 글을 잘 쓰지 않는다. 낱말을 제대로 배우고 익혀야 말글살림을 즐겁게 돌볼 수 있다. ‘나’는 낳고 날고 남는 길이다. ‘너’는 너머로 넘으면서 나란히 넘나들어 서로 넉넉한 사이를 이룬다. 나는 낳고 너는 넣는다. 나랑 너는 나란히 놓는다. 나는 날고 너는 널리 피어난다. 함께 날갯짓을 하기에 활개를 펴듯 환하게 깨어나서 활짝 웃는다. 함께 한마음으로 나하고 너로 만나기에, 둘을 아우르는 ‘우리’를 이루고, 우리는 서로 웃고 울며 말을 나누기에, 어느덧 하늘빛을 함께 맞아들여서 하얗게 눈빛을 주고받는 하나로 선다.

뿌리가 얕은 나무는 잔바람에도 넘어지는데, 밑동이 든든하지 않은 나무는 뿌리가 깊어도 줄기가 꺾인다. 밑동이 든든한 나무이기에 가지가 우거지고 뭇새를 부르며 꽃잔치를 베풀어 열매가 넘실거린다. 사람으로서 나하고 너는 발밑부터 푸르게 다지고, 밑마음을 곱게 여미면서, 밑뜻을 새롭게 펼 밑씨를 낱말 한 자락에 살며시 심으니, 시나브로 싱그러이 피어날 숨꽃으로 마주할 수 있다. 2026.4.25.

ㅍㄹㄴ

#숲노래글쓰기 #책이란무엇인가 #책이란 #숲노래책읽기 #숲책 #최종규 #숲노래 #파란놀 #새로쓰는말밑꾸러미사전 #미래세대를위한우리말과문해력 #열두달소꿉노래 #곁말 #쉬운말이평화 #우리말동시사전 taken in 고흥 by @supnor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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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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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꽃 / 숲노래 만화책 . 만화비평 2026.10.12.
만화책시렁 892

《너무나 귀여운 사람아! 4》
 와타노 마이코
 윤보라 옮김
 대원씨아이
 2026.9.30.

 “かわいすぎる人よ!”는 여러모로 옮길 수 있습니다. “너무나 귀여운 사람아!”라 할 수 있고 “몹시 예쁜 사람아!”라 할 만하고, “참으로 작은 사람아!”라 할 수 있습니다. “자그마한 사랑아!”라 해도 어울립니다. 《너무나 귀여운 사람아!》를 넉걸음째 읽습니다. 곧 나올 다섯걸음도 기다립니다. ‘사람’을 볼 적에 ‘얼굴·겉모습·몸매·옷차림·돈·이름·힘’이 아니라 ‘마음·눈빛·손끝·말씨·숨결·살림새·이야기’로 헤아리는 길이 무엇일까 하고 살며시 묻는 줄거리입니다. 겉으로 드러난 대로 보기 쉬운 온나라로 여길 만하지만, 막상 ‘사람으로서’ 누구나 속으로 피어나는 꽃을 보기를 바란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적잖은 사람들은 으레 겉모습이나 겉이름이나 겉차림에 먼저 휩쓸리는데, 꽤 많구나 싶은 사람들은 처음부터 겉을 아예 안 봐요. 아기와 아이는 겉을 안 따집니다. 우리가 나이가 들면서 철이 나란히 든다면, 어른몸을 입어도 겉을 재거나 따지거나 살피지 않습니다. 우리가 나이만 들 뿐 철이 안 든다면, 아이여도 어른이어도 그만 겉치레에 사로잡힌 채 둥둥 떠내려가고 말아요. 어떤 책을 찾아보면서 사읽을 적에 스스로 아름답게 눈뜰까요? 어떤 사람을 이웃으로 마주하는 오늘을 지을 적에 스스로 사랑으로 깨어날까요? 길은 아주 쉽고 수수합니다. 숲을 품으면 다 알 수 있습니다.

ㅍㄹㄴ

“아쉽게 됐네, 하야마. 메이랑 단둘이 남지 못해서.” “그럼 좀 도와주든가―.” “우리도 메이랑 공부하고 싶은걸.” “너희는 늘 메이랑 딱 붙어 있으니 하루 정도는 양보해 달라고.” 24쪽

“오히려 저는 학창시절에 선생님 팬이라고 하면 ‘외모 팬’이라고 야유당해서 분한 마음을 느껴 왔거든요!” 80쪽

“같이 살기 시작한 후로 삼촌이 노는 거 전혀 못 봐서. 친구 하나도 없는 거 아닌가 걱정했거든. 그러니까 요즘에 놀러다니는 거 보고 안심했어.” 116쪽

#かわいすぎる人よ! #綿野マイ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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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푸른책 #푸른만화 #청소년만화 #아름만화 #숲노래아름책 taken in 고흥 by @supnor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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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 22 알아보는 눈을
책벌레수다 : 값은 몰라도 속을 읽으면

 모든 책은 삶을 배우는 길잡이라고 느낀다. 얼핏 ‘좋은책·나쁜책’으로 가르면서 ‘미운책·싫은책’은 아예 거들떠보지 않는 분이 많은데, ‘좋은책’만 챙기는 사람은 언제나 눈이 좁더라. ‘나쁜책’이라고 손가락질받는 책도 나란히 품으면서 살피는 사람은 으레 눈이 넓더라. 미운책이나 싫은책을 안 따지면서 ‘배울책’을 읽는 사람은 언제나 스스로 눈을 틔우더라.

 나는 누구한테서 책이나 책읽기를 배운 바가 없다. 그저 책집마실을 하며 스스로 익힌 책빛이다. 책집에서 만난 책어른과 책이웃과 책동무하고 끝없이 책수다를 하면서 곰곰이 짚으면서 하나씩 알아갈 뿐이다. 아이랑 책집마실을 하는 동안 “아이가 활짝 웃으며 손에 쥘 책”이란 무엇일는지 헤아리면서 다시 익힐 뿐이다.

 책스승은 따로 없다. 모든 사람이 다르게 책스승이다. 아이들이 책스승이고, 이웃이 책스승이다. 책집지기가 책스승이고, 책을 펴내는 모든 일꾼이 책스승이다. 어떤 책을 쓰거나 옮기거나 내든, 누구나 다르게 책스승이다.

 모든 사람은 스스로 배운다. 스스로 안 배우는 사람이라면 허수아비이다. 스스로 배우는 사람은 “시키는 대로 따라가는 심부름”이 아니라 “스스로 일어나서 일으키는 일”을 한다. 누가 무엇을 맡길 적에 ‘심부름’으로 여기는 사람은 싫어하는 티를 내면서 억지로 맺고, ‘일’로 삼는 사람은 그저 새롭게 배우려는 매무새로 즐겁게 맺는다.

 그러니까 일을 하면 된다. 심부름을 맡을 적에는 “남이 나한테 맡겼다” 같은 틀을 내려놓고서 “내가 스스로 나선다”는 마음으로 돌릴 노릇이다. 맡겼기 때문에 따라가는 길이 아닌, 나서서 맡는 길로 돌아서기에 비로소 바람을 일으키고 물결이 일어난다.

 말할 수 없는 일이란 있을까? 말할 수 없다면 일이 아니라고 느낀다. 모든 일은 누구나 다르게 말하게 마련이다. 말할 수 없다고 여긴다면, 눈치를 보거나 생각을 않거나 이야기를 끊거나 종살이로 치닫는 셈이겠지. 둘레를 보면, ‘말’을 하면 나한테 길미가 안 된다고 여기니 말을 삼가더라. ‘말’을 하면 둘레에서 우리를 이쪽이나 저쪽으로 갈라놓으려고 하니까 싫어서 말을 끊더라. ‘말’을 하면 “네 주제에 무슨 소리?” 하면서 비웃거나 내치니까 창피하거나 수줍어서 말을 안 하고.

 그렇지만 우리가 하는 모든 말은 ‘마음’을 담고 나타내는 소리인걸. 마음은 저마다 ‘삶’이라는 길을 보내거나 지낸 자취이다. 삶을 잇고 누리고 펴기에 마음에 담아서 말로 옮길 뿐이다. 말을 할 수 없다면 아직 삶이라는 자리에서 몸으로 겪거나 치르지 않았다는 뜻이다. 몸으로 겪거나 치렀는데 말을 할 수 없다면 눈치를 보는 굴레이다.

 ‘말’로 드러내기에 뒤틀리지 않는다. ‘말하기’가 아니라 ‘꾸미기’나 ‘치레하기’를 헤아리느라 그만 뒤틀린다. 그저 보거나 느끼고 겪은 대로 말을 할 적에 언제나 스스로 새롭게 배운다. 흔히 “지식은 머리에 쌓고, 교양은 삶으로 드러난다”처럼 잘못 말을 하던데, ‘지식 = 부스러기’라서 머리에 먼지로 쌓여서 생각을 막는다. ‘교양 = 겉치레’라서 교양이 몸에 밸수록 되레 꾸미거나 치레하고 만다.

 우리는 ‘지식·교양’이 아닌 ‘알다(앎)’를 느낄 길을 갈 노릇이다. ‘알’려면 새끼새가 스스로 알을 깨고 나오듯 ‘앓’아야지. 일부러 어려운 책을 읽으면서 끙끙 앓는들 알지 않는다. 가장 쉽다고 여기는 그림책과 어린이책부터 제대로 읽어낼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알깨기를 하면서 알아차린다. 이렇게 쉬운데 무슨 뜻일까 하고 되짚고 되새겨야 천천히 알아본다.

 ‘쉬운책’을 읽기 때문에 생각을 못 하지 않는다. ‘쉬운책’을 곁에 안 두는 탓에 생각을 잃는다. 어린이하고 나란히 서서 이야기할 ‘쉬운책’부터 품기에 생각이 반짝반짝 살아나고 깨어난다. 어린이 곁에 서지 않으려 하니 ‘어려운책’은 손에 쥐지만, 막상 생각하고는 한참 멀다. ‘어려운책’을 쥐어야 많이 배운다고 잘못 여기느라, 그만 말을 어렵게 꼬거나 뒤트는 굴레에 사로잡힌다.

+ taken in 고흥 by @supnor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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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
책숲하루 2026.10.9. 한글날꽃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국어사전 짓는 도서박물관)
: 우리말 배움터 + 책살림터 + 숲놀이터

 한글날을 앞두고서 부산 마을책집 〈마주서가〉에서 한글날꽃을 폈습니다. 한글날 우리 스스로 저마다 새롭게 꽃빛으로 물들면서 꽃길을 꽃마음으로 걸어가는 꽃발과 꽃손과 꽃눈을 함께하자는 뜻입니다.

 누구나 꽃입니다. 온누리는 암꽃수꽃이 나란합니다. 사람도 뭇숨결도 언제나 꽃입니다. 우리가 하는 말도 말꽃이고, 우리가 쓰는 글도 글꽃입니다. 우리가 이야기를 하면 이야기꽃입니다.

 어떤 꽃으로 마주하면서 즐겁게 ‘마주꽃’으로 만나 볼까요? 스스로 어떤 꽃으로 삼으면서 기쁘게 ‘하루꽃’을 그려 볼까요? 서로 어떤 꽃으로 바라보면서 새롭게 ‘서로꽃’이라는 길을 거닐까요?

 태어난 지 닷온(500) 해가 되었어도 정작 사람들이 널리 쓸 길이 없던 ‘훈민정음·정음’이었습니다. 임금·글바치·벼슬아치는 중국글(한문)만 쓰면 된다고 여긴 닷온 해였습니다. 낡은 틀이자 높은 담벼락인 중국글이었고, 일본이 총칼로 쳐들어온 나날에다가, 1945해 뒤에도 이승만·박정희·전두환을 잇는 서슬퍼런 얼음나라에서는 으레 중국글을 높였습니다.

 닷온 해에 걸쳐서 숨죽이던 ‘훈민정음·정음’이지만, 작은사람 주시경 님이 ‘한글’이라는 이름을 처음 지어서 두루 가르치는 첫걸음을 뗐습니다. 우리말을 담는 그릇인 우리글이 비로소 빛을 본 지 이제 온해(100년)입니다. 우리말이 꽃으로 피려면, 우리글이 꽃길을 가려면, 먼저 우리 스스로 눈을 틔우고 귀를 열고 마음을 가꿀 노릇입니다. 눈꽃을 틔우기에 우리말꽃이 핍니다. 귀꽃을 열기에 우리글꽃을 짓습니다. 마음꽃을 돌보기에 살림꽃으로 잇습니다.

 ‘바른소리(훈민정음)’를 여미어 내놓은 분을 오른손으로 모신다면, ‘한글(함께 한마음으로 한사랑을 이루어 한살림을 일구는 길잡이인 글)’을 가다듬어 가르친 분을 왼손으로 기릴 노릇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두 분 사이에서 우리 스스로 새롭게 하루를 일구고 짓고 빚고 나누면서 이곳을 노래하면 넉넉하다고 봅니다.

 우리는 노래하려고 푸른별에서 태어났습니다. 우리는 사랑하려고 파란별에서 만납니다. 우리는 살림하며 보금자리에 깃들려고 서로서로 어깨동무합니다. 마음을 얹은 소리인 말 한 마디에 꿈과 빛과 길과 숨과 꽃과 씨와 별을 고루 담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글날은 ‘쉼날(공휴일)’이기 앞서 ‘함께날’입니다.

ㅍㄹㄴ

*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 짓는 일에 길동무 하기
http://blog.naver.com/hbooklove/28525158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지기(최종규)가 쓴 책을 즐거이 장만해 주셔도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짓는 길을 아름답게 도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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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읽는 나 + 읽는 바보
읽는 엄마

 한가을볕이 아주 따뜻하다. 한여름볕처럼 후끈거리지는 않되, 온들을 죅좍 덮으면서 바싹 말린다. 거둔 낟알은 한가을볕에 이내 마르면서 속으로 깊이 해를 품는다. 아직 논에서 살랑거리는 나락은 한가을볕에 무르익으면서 샛노랗다. 첫가을에는 논둑에 모시와 차조기가 살랑거렸다면, 한가을에는 억새와 나팔꽃이 살랑거린다. 이윽고 늦가을로 넘어서면 멧노랑(산국)과 쑥부쟁이가 살랑거릴 테지.

 한가을밤은 시골서는 춥고, 서울(도시)서는 따스하다. 큰서울(대도시)뿐 아니라 작은서울(소도시)도 한가을밤이 안 춥다. 흙을 모조리 뒤덮으니 숨쉴 틈이 없다. 맨흙과 맨땅은 찾아볼 길이 없기에, 뜨끈기운(복사열)이 못 나간다. 봄볕이건 가을볕이건 푸르게 맞아들여서 둘레를 차분하게 식히는 풀꽃나무가 없다시피 하니, 이쪽 서울이건 저쪽 서울이건 갑갑하고 매캐하다.

 부산에서 한가을낮과 한가을밤과 한가을아침을 보내며 곱씹는다. 우리는 언제쯤 잿더미(아파트)를 멈추고서 숲정이로 나아가려나? 벼슬아치와 글바치는 언제쯤 먼저 서울을 뒤로하고서 시골내기로 거듭날까? 우리는 이제부터 마당을 둔 작은집에서 씨앗을 심고 나무를 돌보는 삶을 지을 수 있을까? 나라지기와 벼슬아치가 우리더러 잿더미(아파트)만 사서 파묻히라고 등을 떠밀더라도, 서울이 아닌 시골을 살림터로 삼을 수 있는가?

 문득 엄마아빠 두 사람을 헤아린다. 지난날에는 사내(아빠)만 배움터(서당)를 드나들 수 있었다면, 이제는 배움터(강의장·학습소)마다 가시내(엄마)가 가득하다. 지난날에는 사내만 배움터로 등을 떠밀었고, 오늘날에는 누구나 배움터를 드나드는 틈을 내는데, 막상 사내는 배움터에 확 등지고, 가시내만 배움터를 그득그득 채운다.

 엄마는 어떤 사람일까? 아빠는 어떤 사람이지?

 엄마는 놀려고 태어난 가시내이지 싶다. 아빠는 엄마랑 함께 놀려고 온 머스마이지 싶다. 엄마아빠는 ‘산업역군·노동자·근로자’가 아니다. 엄마아빠는 ‘살림꾼·사랑지기·일꾼’에 ‘노래지기·놀이동무·마음길잡이’로 만나기에 아름답고 사랑스럽다.

 온누리 모든 아이는 엄마아빠랑 놀고 노래하며 기쁘기를 바란다. 엄마아빠는 언제나 아이한테 첫 놀이동무요 말동무요 살림동무이자 마음동무이다. 엄마아빠는 서로서로 사랑동무에 살림동무일 뿐 아니라, 함께 아이를 사랑하면서 살림을 가꿀 사이로 지내면서 즐겁고 오붓하다.

 가을에 가을볕을 잊고 잃는 까닭을 ‘엄마아빠’랑 ‘아이’ 사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우리 스스로 엄마 자리와 아빠 자리를 잊고 잃었다. 더구나 아이 자리마저 잊고 잃을 뿐 아니라, 아이 자리를 빼앗기까지 한다.

 집에서 나란히 살림하고 노래하는 수수한 너를 그린다. 집을 함께 짓고서 같이 웃고 이야기하는 너를 반긴다. 짓는 곳인 집이요, 지내는 터인 집이며, 즐거운 자리인 집에, 즈믄길(천년만년)로 잇는 집이다. 우리는 집에서 짓는다. 밥과 옷과 집을 집에서 짓고, 말과 글과 살림을 집에서 짓는다. 이야기와 노래와 생각을 집에서 짓고, 꿈과 일과 놀이를 집에서 짓는다.

 집부터 아늑하고 포근하게 보금자리로 가꾸기에 서로 반갑다. 즈믄해를 사랑으로 지내며 즐거울 걸음걸이를 꿈꾸며 토닥이고 어깨동무하기에 서로 반짝인다. 그나저나 좀 졸립다. 부산으로 바깥일을 하러 하룻밤길을 나서면서 쉴새없이 걸어다녔더니 기운이 쪽 빠진다. 고흥집으로 돌아갈 시외버스를 타고서 까무룩 잠든다. 곧 집으로 돌아가면, 한가을 풀벌레노래와 한밤 별잔치를 누리면서 기운을 차려야겠다. 엄마 손끝과 아빠 손길이 닿으면서 아이 손빛이 초롱초롱 피어나는 새하루를 생각한다. 2026.10.7.물.

ㅍㄹ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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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을 앞두고서 부산 마을책집 〈마주서가〉에서 한글날꽃을 폅니다. 한글날 우리 스스로 저마다 새롭게 꽃빛으로 물들면서 꽃길을 꽃마음으로 걸어가는 꽃발과 꽃손과 꽃눈을 함께하자는 뜻입니다.

 누구나 꽃입니다. 온누리는 암꽃수꽃이 나란합니다. 사람도 뭇숨결도 언제나 꽃입니다. 우리가 하는 말도 말꽃이고, 우리가 쓰는 글도 글꽃입니다. 우리가 이야기를 하면 이야기꽃입니다.

 어떤 꽃으로 마주하면서 즐겁게 ‘마주꽃’으로 만나 볼까요?

ㅍㄹ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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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농약드론

“몸에 좋은 약은 쓰다”처럼 말하네. 몸에 이바지해도 싫어하는구나. 아니, 몸을 살리기를 안 바란다는 뜻이네. 몸을 북돋우거나 일으킨다는데 ‘쓴맛’이라서 꺼린다고 하니까. 몸에 이바지할 적에 ‘단맛’일까? 또는 ‘짠맛’일까? 또는 ‘단짠맛’일까? 아픈 몸이 나으려면 굶을 노릇인데, 조금씩 밥을 받아들이려고 할 적에는 싱겁게 먹게 마련이야. 달거나 짜거나 매우면 속을 긁거든. 그러면 헤아려 보렴. 아픈 데가 나은 뒤에도 ‘단·짠·맵’이 네 몸에 이바지하겠니? ‘맛좋다’고 할 적에 너를 살리는 밥이 될까? “먹기 좋은 밥”이나 “듣기 좋은 말”이나 “보기 좋은 모습”은 언제나 너를 갉아. 먹기 좋거나 듣기 좋거나 보기 좋기를 바라느라 쓴맛을 멀리하거나 내칠 적에는, 넌 속으로 곪고 찌들다가 망가지지. 무엇보다도 쓴맛·쓴말·쓴빛이란 따로 없어. 네가 먼저 스스로 ‘쓰다’고 여기느라 어쩐지 “안 좋다”는 불씨를 심을 뿐이야. 네가 가만히 바라보면서 ‘살림맛·살림말·살림빛’을 찾으려고 할 적에는, 몸과 마음을 나란히 살릴 테지. 살림맛은 짜거나 달거나 맵지 않아. 살림맛은 짙푸르거나 옅푸르게 수수한 숲맛이야. 살림말은 ‘칭찬·추모·우상·영웅·훈장·명예’가 아니지. 살림말은 그저 풀꽃나무를 품은 숲말이야. 살림빛은 햇빛과 별빛과 바람빛과 비빛이란다. 어느덧 시골마다 죽임물을 듬뿍 뿌리면서 ‘농약’이라는 이름을 쓰더구나. 죽이면서 ‘약’이라고 여겨. 게다가 죽임말을 드론을 하늘에 띄워서 좍좍 뿌리네. 왜 이렇게 맛·말·빛을 다 잊고 잃은 채 죽음수렁을 헤매야 하니? 왜 풀을 품지 않으면서 그저 미움씨를 퍼뜨리니? 좋은책도 좋은말도 좋은집도 좋은일도 좋은맛도 아닌, 살림책·살림말·살림집·살림일·살림맛을 바라보렴. 2026.8.23.달.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열두 달 소꿉노래》,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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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6.10.4.
인문책시렁 508

《대학인 그들은 대학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가와이 에이지로
 이은미 옮김
 유원
 2003.11.28.

 처음 읽은 지 어느덧 스무 해가 넘은 《대학인 그들은 대학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를 돌아봅니다. 글쓴이는 1944해에 흙으로 돌아갔고, 꽤 예전에 남긴 글을 엮어서 《學生に與う》라는 이름으로 나온 책이요, 한글판이 이럭저럭 거듭 나오곤 합니다. 언뜻 보면 해묵은 꾸러미라고 할 테지요. 가르치고 배우는 길을 밝히는 줄거리를 살피려고 한다면, 두고두고 되새길 만하기도 합니다.

 한글판에는 ‘대학인’이라 붙지만 일본판에는 ‘學生(배움이)’이라고만 붙습니다. 글쓴이가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사람은 ‘대학생’뿐 아니라 ‘배우는 모든 사람’입니다. 어린이도 푸름이도 이야기를 듣기를 바라고, 어른도 이야기를 듣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할매할배 나이에 이르러도 늘 새롭게 배우면서 삶을 가다듬을 노릇이니까요.

 종이(졸업장)를 따는 곳에서도 배웁니다만, 종이를 따지 않는 모든 곳에서도 배웁니다. 종이를 받아서 “난 이렇게 배웠어!” 하고 내세울 수 있습니다만, 아무런 종이를 안 주고받으면서 “난 그저 이렇게 살림을 해.” 하고 빙그레 웃을 수 있습니다. 예부터 “익은 벼가 고개를 숙인다” 하고 이르듯, 배우는 사람은 ‘배움길’로 끝이 아닙니다. 배운 바를 삶으로 풀어내어 살림살이에 펼칠 적에 비로소 ‘익힘길’로 접어들어요.

 올해(2026)에는 ‘서울대 10곳 만들기’라는 이름으로 몇 군데 열린배움터에 목돈을 이바지한다고 합니다. 뜻있는 일이라고 여깁니다만, 아무래도 배움길과 익힘길하고는 멀구나 싶어요. 우리는 ‘서울대 10곳 만들기’가 아니라 ‘누구나 살림꾼으로 하루짓기’를 바라볼 노릇일 테니까요.

 나라 곳곳에 있는 열린배움터에 목돈을 이바지하는 일은 안 나쁩니다. 그러나 푸른배움터나 어린배움터를 마치고도 저마다 삶터에 이바지하는 일꾼으로 서는 틀부터 세울 노릇입니다. 또한 어린배움터조차 안 다니고도 마을과 보금자리에 즐겁게 이바지하는 살림꾼으로 서는 얼거리부터 짤 노릇입니다.

 사람이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길을 누구나 가르치고 배울 때라야 집과 마을과 나라입니다. 나하고 너가 어떤 사이로 만나서 ‘우리(한집·한마을·한나라·한별)’를 이룰 적에 아름답고 즐거울는지 가르치고 배울 때라야 빛나게 마련입니다. 열 살만 배워야 하지 않고, 스무 살에 더 배워야 하지 않아요. 서른 살이나 쉰 살에도 배울 노릇입니다. 일흔 살과 아흔 살에도 배워야지요.

 배우려 하지 않기에 뻣뻣하고 딱딱하게 담을 높이느라 꼰대가 되고 말아요. 이른바 ‘늙은이(늙다리)’입니다. 배우려 하기에 대나무처럼 곧게 대를 올리면서 온삶을 대수로이 가다듬을 줄 아는 사람인 ‘어른’으로 섭니다. 어질게 서는 사람일 때에야 어른입니다. 늘 새롭게 배우면서 살림으로 익힐 적에 어른이에요.

 나라와 마을도, 또한 모든 집마다, ‘대학바라기’는 이제 접을 때입니다. 열린배움터도 있어야 하되, 집집마다 보금자리라는 터전을 살리고 사랑하는 길을 나누고 누리는 첫발부터 뗄 노릇입니다. ‘배움이바지(교육비 지원)’는 언제나 모든 작은 살림집에 베풀 노릇이에요. 집안에 아늑하고 아름다울 때에 마을도 아늑하고 아름답습니다. 집부터 아름답게 설 적에 어깨동무(성평등·평화)도 저절로 이루는 나라입니다.

ㅍㄹㄴ

정말로 읽는 것에 숙달되려면 쓰는 것이 필요하다. 16쪽

다른 것은 다 빌려도 좋지만, 책만큼은 자기 것을 옆에 두고 언제든 꺼내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책을 읽은 뒤 감상을 적어 놓거나, 구입한 날짜를 적어 놓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19쪽

아무리 경험을 많이 쌓았다고 하더라도, 경험했던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25쪽

취직을 최고가치라고 생각하고 시험을 인생의 가장 큰일이라고 하는 심리는, 원래 인생의 최고가치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사람이나 취하는 태도이다. 37쪽

여전히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들의 덕망은 위장된 것이다. 인간의 진실한 가치는 그저 해야만 하는 일이 생기면 반드시 해야 하는 데에 있는 것이다. 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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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낯설게 새롭게 (2026.6.16.)
― 부산 〈책과아이들〉

 누구나 손으로 이룹니다. 언제나 손에서 피어납니다. 우리 손바닥은 땅바닥과 같아서, 씨앗이 깃드는 밭에서 푸성귀가 자라면서 둘레를 밝히듯, 우리 손바닥에 얹은 일감을 새롭게 가꿀 수 있습니다. 손바닥에 낱말 하나를 사뿐히 얹으면, 이 낱말이 무럭무럭 자라는 풀꽃나무처럼 푸르게 빛날 테지요.

 그냥그냥 한자리에 있으면 ‘뭉치다’라 하고, 그럭저럭 한자리에 두면 ‘모으다’라 합니다. 잘 모으면 ‘그러모으다’요, 동무하며 돌아보고 돕듯 모이기에 ‘동아리’입니다. 어떻게 한자리를 이루면서 말을 나누려 하느냐에 따라서, 어느 날은 ‘이야기’를 하고, 어느 날은 ‘수다’를 하고, 어느 날은 ‘겉말(겉도는 말)’에 그칠 수 있습니다.

 누가 옳을 수 있습니다. 누가 그를 수 있습니다. 누가 맞을 만하고, 누가 틀릴 만합니다. 옳고그름이나 맞음틀림을 따지는 일은 안 나쁘되, 옳고그르다고 따지면서 “틀린 너는 나빠! 넌 나쁘니 죽어야 해!” 하고 윽박지르는 싸움불씨는 거둬들여야지 싶어요. ‘틀린너(그른이웃)’를 너그러이 헤아리면서 “그렇게 하면 그르거나 틀리더라. 우리 함께 어울려서 노는 길을 가 볼까?” 하고 손내미는 길로 접어들 적에 비로소 ‘어른’이라고 느낍니다.

 이른아침에 길을 나서서 부산에 닿아 세 군데 책집을 들른 끝에 〈책과아이들〉에 이릅니다. 세 군데 책집을 들렀으나 책짐이 넘치지는 않습니다. 오늘만큼은 가볍게(?) 스무 자락쯤 장만했습니다. 〈책과아이들〉에서도 책을 더 장만할 테니, 고흥으로 돌아가는 책짐은 제법 묵직하겠지요.

 길미를 따지면서 거머쥐려고 하기에 ‘낯설다’고 느끼면서 꺼리고 싫어하고 등집니다. 마음을 살피면서 나누려고 하기에 ‘새롭다’고 여기면서 가까이하고 반기고 배웁니다. 길미를 따지는 눈길이기에 ‘익숙한’ 대로 돈바라기에 스스로 얽매여서 가두고 갇히는구나 싶어요. 마음을 살피는 눈길이기에 ‘배우고 익혀’ 슬기롭게 숨길을 틔우는 살림짓기로 나아갈 테고요.

 함께가는 길을 바라볼 적에는 늘 ‘새롭다’는 마음이지 싶습니다. 함께가는 길을 등질 적에는 느루 ‘낯설다’라는 느낌으로 꽁꽁 싸매지 싶습니다. 함께짓는 길을 헤아릴 적에는 언제나 ‘새롭’게 씨앗 한 톨을 싶는 하루이지 싶습니다. 함께짓는 길을 내칠 적에는 노상 ‘낯설’어서 싫고 지겨워서 스스로 쳇바퀴이고요.

 오늘 이곳에서 마주하는 이웃님하고 나누는 말은 참말로 한결같이 새롭습니다. “이미 안다”는 늪에서 나오면, “이제 새로 본다”는 별누리로 갈 수 있어요.

ㅍㄹ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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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읽는 나 + 읽는 바보
읽는 서울

 서울에 닿으면 서울책집부터 찾는다. 인천에 닿으면 인천책집부터 찾아간다. 대구·광주·부산·대전·청주·전주·진주 모두 그곳책집부터 헤아린다. 책집이 없는 고장은 없을 테지만, ‘늪책(학습지·참고서)’으로 벌이를 하는 책집만 있는 곳이 꽤 많다. 늪책을 다루지 않으려고 하는 마을책집을 차리는 분이 꾸준히 있되, 서울과 제주와 몇몇 큰고장으로 쏠린다. 작은고장이나 시골에서 꿋꿋하게 마을책집을 차리는 손길은 아직 너무 적다.

 서울에 닿아서 책집 두 곳을 찾아보았다. 이제 종이를 얻어서 책더미 하나를 묶는다. 한결같이 종이책을 만지고 살피고 읽는다. 언제나 종이에 쓰고 담고 생각한다. 셈틀과 손전화도 쓰되, 책읽기와 글쓰기라는 길은 으레 종이를 바탕으로 삼는다. 먼먼 옛날부터 온누리 모든 사람이 풀포기 속심을 얻어서 실로 삼고 천으로 짜고 옷으로 지었듯, 책과 글을 여미는 속빛은 종이를 다루는 손길로 가꿀 일이라고 본다.

 시골에서는 종이책이 아니더라도 풀과 나무를 매만지면서 책이라는 이야기를 말없이 마음으로 누리고 나눌 수 있다. 모든 종이는 ‘나무’가 내어준 몸이다. 모든 종이는 아름드리숲을 이룬 아름나무한테서 고맙게 얻는다. 나무가 있기에 종이를 쓴다. 아름숲이 있기에 책을 묶는다. 나무가 없다면 글을 못 쓰는 얼개이다. 숲을 모른다면 책읽기를 모르거나 겉훑기만 하는 셈이다.

 서울이라면 길나무를 보다가 책집으로 간다. 우리나라 서울은 아직 ‘숲’이라 하기는 어려운 ‘쉼뜰’이라고 할 만하다. 사람이 함부로 안 건드리는 풀꽃나무잔치일 적에 비로소 숲이라 한다. 사람이 섣불리 가지나 줄기를 친다면 숲일 수 없고, 사람이 일부러 바닥돌을 놓는다든지 거님길을 낸다면, 이때에도 숲이 아니다. 숲이라고 하려면, 사람뿐 아니라 뭇숨결과 뭇짐승과 뭇새가 그저 해바람비를 나란히 품으면서 아늑한 터전일 노릇이다.

 부산도 인천도 서울도 으레 갈아타고 또 갈아탄다. 한달음에 갈 수 있는 길은 드물되, 꽤 멀어도 이래저래 달구지에 책짐을 싣고서 읽고 쓸 만하다. 지난날에는 누구나 안고 지고 업고 이면서 다녔다면, 이제는 무척 무거운 짐조차 수월히 짐받이나 바닥에 놓고서 느긋이 오갈 수 있다. 짐나래(택배)에 맡겨도 나쁘지 않되, 책짐이라면 되도록 스스로 품고 안고 이고 들면서 다닐 노릇이다. 손길이 닿으면서 속을 읽는 책이다. 손끝에 따라 새롭게 살피는 책이다. 눈끝으로도 훑되, 언제나 손과 발과 팔과 다리와 온몸을 고르게 쓰면서 맞아들이면서 반짝이는 책이다.

 예전에도 읽는 사람이 읽을 뿐이고, 쓰는 사람이 쓸 뿐이다. 요즘도 쓰는 사람이 쓰고, 읽는 사람이 쓸 뿐이다. 종이로 읽든 마음으로 읽든, 나누려고 하기에 읽는다. 마음에 쓰든 종이에 쓰든, 펴려고 하니까 쓴다. 사람들이 책을 안 읽는다면, 이제 나무를 안 읽는다는 소리이다. 사람들이 책을 덜 읽는다면, 어느새 숲을 잊거나 등진다는 뜻이다. 손수 나무를 심어서 돌볼 땅을 마당에서 누리는 집에서 살아갈 때라야 책을 푸르게 읽는다. 우리집과 이웃집 모두 숲정이에 안겨서 크고작은 새가 날아들어 노래할 때라야 글을 푸근하게 쓴다.

 한가람을 잇는 다리를 건너고 또 건너고 새로 건넌다. 어느 책은 쭉정이인데 몹시 잘 팔린다. 어느 책은 알찬데 이내 사라진다. 이미 읽눈도 쓰손(쓰는 손)도 길든걸. 늘 새롭게 배우면서 쓰려고 하면, 해를 거듭하며 모든 쭉정이는 곧 걷히면서 모든 알짜가 빛나겠지. 나무가 죽어가고 숲이 시늉인 서울에 눌러앉아서 책을 쥐거나 글을 붙들면, ‘읽눈·쓰손’ 모두 ‘읽눈시늉·쓰손흉내’로 갇히느라 겉치레·겉발림에 파묻혀서 해롱거리는구나 싶다.

 저녁일을 앞두고서 책집마실로 배운다. 세 군데 작은책집까지 들르고서 일할 곳으로 옮긴다. 밥이 바로 책이요, 마음에 얹는 이야기가 저마다 빛이다. 눈으로 머금고 손으로 받아들인다. 눈길로 누리고 손길로 익힌다. 발걸음으로 찾고 발바닥으로 익힌다. 시나브로 슬슬 해가 넘어가면 서울길도 붐비겠구나. 2026.9.29.불.

ㅍㄹ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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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2026.8.)에 편 이야기꽃은 ‘밥’입니다. 이달인 오늘(2026.9.29.)은 ‘꽃’을 밑말로 삼아서 이야기를 펼칩니다. 다음달(2026.10.)에는 ‘씨’를 밑말로 잡고서 이야기를 펴고요.

- 곳 : 서울 숭실대 뒤쪽 ‘토기장이의 집’ 지하 1층 〈라이브러리 두란노〉
- 때 : 19:00부터 2시간
- 누가 : 파란놀 (최종규)

함께할 이야기를 그리면서 즐겁게 서울로 가는 길입니다. 지거나 시든 꽃을 바라보는 첫가을 끝자락이면서, 새롭게 돋거나 피는 꽃도 마주하는 한가을 어귀입니다. 이른아침에 옆마을에서 시골버스를 타려고 논둑길을 걷다가 나팔꽃과 억새꽃을 보았습니다. 어제는 논둑에 돋아나는 고들빼기꽃을 보았습니다.

어느 꽃은 물결치듯 무리지어 퍼진다면, 어느 꽃은 가만히 가볍게 몇 송이나 한 송이로 들숲메를 밝힙니다. 우리는 그저 ‘꽃’을 보되 모든 꽃은 암곷과 수곷이 나란합니다. 우리는 그저 서로 ‘사람’으로 마자후되 모든 사람은 암사람과 수사람으로 어깨동무합니다.

낱말 한 마디에 숨은 밑뜻으로 ‘꽃’을 읽기도 하면서, 꽃이 피고지는 ‘곳’은 무엇인지, 우리가 이 터전에서 오래오래 이야기를 함께하면서 돌아보는 ‘곰’은 어떻게 살필 만한지 나누는 자리입니다.

ㅍㄹ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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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
책숲하루 2026.9.27. 한가위 비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국어사전 짓는 도서박물관)
: 우리말 배움터 + 책살림터 + 숲놀이터

 한가위에 이르기까지 보름 남짓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가을걷이가 한창인 철에 비가 오지 않으니 시골에서는 반가운 일입니다. 다만, 올해 첫가을에는 비없이 햇볕날을 이었되, 가을걷이를 이웃일꾼(이주노동자)이 벼베개(콤베인)로만 하고, 베어낸 나락은 햇볕말림이 아닌 틀말림(기계건조)을 하는군요. 벼베개를 쓰더라도 길에 펼쳐서 햇볕말림을 하던 시골내기가 드뭅니다. 머잖아 모두 사라질 수 있습니다.

 한가위에 이르는 동안 별빛이 엄청나게 너울거렸습니다. 밤이면 미리내를 올려다보면서 별빛을 헤아리는 나날이었어요. 한가윗날에는 구름이 짙어 고즈넉이 풀벌레노래를 누렸습니다. 한가위 이튿날에는 비가 내리면서 먼지와 티끌과 풀죽임물(농약)을 말끔히 씻더군요. 이날 낮에는 빗줄기가 그쳐서 낫을 갈아 ‘우리집 뒤꼍 풀베기’를 신나게 했습니다.

 슥슥 느긋이 낫질을 하며 풀내음을 맡으면 온몸이 즐겁습니다. 그런데 한창 낫질을 하다가 빗물에 젖은 풀포기를 긋던 손이 살짝 미끄러지며 왼손 둘째·셋째손가락을 콕 찍었습니다. 부드럽게 긋던 낫이라 가볍게 찍었고, 용케 셋째손가락까지 함께 찍느라 둘째손가락이 그리 깊게 찍히지는 않았습니다.

 핏물이 흥건히 번져도 모싯잎과 한삼덩굴잎으로 손가락을 감싸면서 풀베기를 마저 했습니다. 일을 마친 뒤에 빨래까지 하지는 못 하고, 땀에 젖은 옷을 헹구고 몸을 씻은 뒤에 이럭저럭 집일을 하고서 쉬었어요. 이다음날에는 이럭저럭 밥을 짓고 빨래를 하고 지냈습니다. 다친 손가락은 다쳤을 뿐이요, 천천히 나으면 됩니다.

 풀가시에 긁히는 자리는 이레쯤 지나면 사라집니다. 낫에 찍혀서 벌어진 흉은 보름이나 달포쯤 지나면 아뭅니다. 2000해에 낫에 처음 손가락을 찍었을 텐데, 지난 2011해부터 올해까지 거의 해마다 하루쯤 낫에 새삼스레 손가락을 찍혀 옵니다. 앞으로 손가락을 멀쩡히 건사하는 나날을 맞을 수 있고, ‘한해씻김’ 같은 일을 치를 수 있습니다. 어느 길이건 푸른빛을 품는 보금살림입니다.

 ‘집’이라는 낱말은 아름답습니다만, 우리나라 낱말지기(사전편찬자·언어학자) 가운데 ‘집’처럼 수수한 낱말을 사랑하는 일꾼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한글’은 세종임금이 아닌 주시경이라는 작은이가 지은 이름이요, 세종임금은 ‘정음·훈민정음’이란 이름으로 글씨를 베풀었으며, 주시경은 말틀(문법)과 글길(문장표현법)을 비로소 가다듬고 새롭게 열었습니다. 우리는 이제 ‘한말글’ 같은 이름을 헤아릴 때입니다. ‘한국어’도 ‘조선어’도 아닌 “함께 하늘빛으로 하나를 이루는 집(우주宇宙)”이라는 뜻으로 ‘말집’인 한말글을 생각할 만합니다. 어질게 생각을 짓고, 사랑으로 살림하며 지낼 줄 아는 집에서 즐거울 때라야, 누구나 ‘사람’이라는 사이(새)를 틔웁니다.

 집을 보면서 보금자리를 가꿉니다. 집을 돌보면서 봄빛을 바라봅니다. 집을 보듬으면서 보드랍고 보얗게 소꿉노래를 부릅니다. 포근하게 드리우는 손길로 마주볼 수 있기에 함께 즐겁습니다.

 마음을 담아서 나누는 소리인 말이요, 들빛을 바람에 실어서 달리는 말이며, 집과 집이 누리와 누리로 만나서 온누리를 이루는 말(마을)이고, 맏이와 마루와 머드러기처럼 앞장서며 크게 피어나는 말이자, 온마당에서 한 걸음씩 나아가는 이슬받이인 말입니다.

ㅍㄹㄴ

*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 짓는 일에 길동무 하기
http://blog.naver.com/hbooklove/28525158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지기(최종규)가 쓴 책을 즐거이 장만해 주셔도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짓는 길을 아름답게 도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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