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gram story viewer> @1eegyumin> Posts
9.3K
followers
1936
following
오늘의 동네를 걷습니다
📸 SONY α7R VI Photographer
🎬 은평구 홍보활동가
📩 | [email protected]
POSTS STORIES REELS TAGGED
노원구 중계동

중계동에서는 어디서든 산이 보인다.

중계동은 불암산 자락에 기댄 동네다. 큰길에서도, 아파트 단지 사이 골목에서도, 학원가 상가 건물 너머로도 바위 봉우리가 올려다보인다. 처음 걷는 사람도 방향 감각을 잃지 않게 해주는 풍경이다. 산이 가까운 동네에서 산다는 게 이런 느낌이구나 싶었다.

중계동 하면 학원가를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중계동에 형성된 학원가는 서울에서도 손꼽히는 규모다. 수학, 영어, 국어 간판이 한 건물에 층마다 빼곡히 붙어 있다. 오후가 되면 학생들이 거리를 채우기 시작하고, 저녁이면 더 많아진다. 이 동네가 오래도록 교육 특구로 불려온 이유가 거리를 걸으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학원가를 벗어나 조금만 걸어 들어가면 동네는 금세 조용해진다.

당현천이 동네 안쪽으로 흐른다. 폭이 넓지 않은 하천인데, 양쪽으로 수풀이 자라 있고 오리들이 물 위에 떠 있었다. 다리 위에서 할아버지가 아이와 함께 물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오랫동안 서서 보고 싶은 장면이었다. 당현천을 따라 이어지는 산책로는 중계동 주민들의 일상 속에 깊이 들어와 있다. 해가 기울어지는 오후에도 사람들이 천천히 걷고 있었다.

중계동에는 아파트가 많다. 대단지들이 곳곳에 들어서 있고, 단지와 단지 사이로 은행나무 가로수 길이 이어진다. 잎이 막 올라온 나무들이 길 위로 터널을 만들고 있었다. 벤치에 한 사람이 앉아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아무도 서두르지 않는 오후였다. 중계동의 아파트 단지들은 낡은 것과 새것이 섞여 있어서, 걷다 보면 이 동네가 오랜 시간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는 걸 느끼게 된다.

불암산에는 철쭉동산이 있다. 봄이 되면 산 중턱을 철쭉이 가득 덮는다.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시야가 탁 트이면서 분홍빛 언덕이 펼쳐진다. 중계동 골목에서 올려다보이던 그 산이 이런 풍경을 품고 있다는 게, 걸으면서 자꾸 생각났다. 봄에 중계동을 찾는다면 불암산 철쭉동산까지 함께 걷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중계동은 조용하게 살아가는 동네였다. 유명한 관광지가 있는 것도, 특별한 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산이 보이는 골목을 걸으면서, 천변에 앉아 오리를 바라보면서, 나무 그늘 아래 서 있다 보면 서울 안에 이런 속도의 동네가 있다는 게 오히려 반가웠다. 중계동이 그랬다.

Copyright @1eegyumin All rights reserved. taken in 노원 중계동 by @1eegyumin
208
5 months ago
Download
#협찬 #소니코리아

A7R6로 담아본 광장동의 디테일📸

크롭을 통해 새로운 시선으로 순간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에요☺️

Copyright @1eegyumin All rights reserved.

#소니 #sony #a7r6포토그래퍼 taken in 서울특별시 광진구 광장동 by @1eegyumin
7
3 hours ago
Download
은평구 수색동

수색이라는 이름은 물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한강 하류에 자리한 이곳은 예부터 물치 또는 무르치라 불렸고, 그 소리가 한자로 옮겨지며 수색이라는 지명이 되었다고 한다. 장마철이면 마을과 벌판이 물에 잠기곤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지금은 철길과 아파트가 먼저 눈에 들어오는 동네지만, 이름의 뿌리를 따라가면 물이 흐르고 들판이 펼쳐졌을 옛 풍경을 만나게 된다.

수색동은 1949년 서울에 편입되었고, 이듬해 지금의 이름을 얻었다. 서울의 서쪽 끝에 자리한 이 동네는 철길을 사이에 두고 경기도 고양시와 맞닿아 있다. 예부터 서울과 바깥 지역을 잇는 길목이었고, 그 경계에는 까치고개라는 옛 지명도 남아 있다. 서울의 끝자락이라는 위치는 수색동의 풍경을 오랫동안 결정해 온 조건이었다.

그 중심에는 수색역이 있다. 1908년 경의선의 역으로 문을 연 수색역은 사람과 물자를 실어 나르는 교통의 거점이었고, 열차를 정비하고 관리하는 철도 시설이 들어서면서 철도와 함께 살아가는 동네가 되었다. 역 주변에는 철도 종사자들이 살던 관사촌도 자리했다. 한집에 두 가구가 살던 작은 집들은 시간이 흐르며 증축되었고, 연탄을 때던 아궁이도 보일러로 바뀌었다. 철도와 함께 일하고 살아가던 사람들의 일상이 그 집들에 켜켜이 쌓였다.
수색역에는 한때 같은 이름을 가진 두 역이 있었다. 경의선 수색역에 이어 지하철 6호선 수색역이 생기면서 승객들이 혼란을 겪었고, 이후 지하철역은 디지털미디어시티역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철길의 수색은 이름을 지켰고, 지하철의 수색은 새로운 이름을 얻었다. 같은 동네를 가리키던 이름이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된 셈이다.

철길 주변의 풍경도 빠르게 달라지고 있다. 수색증산뉴타운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오래된 주택과 골목이 있던 자리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한때 낮은 지붕들이 이어지던 풍경은 이제 높이 솟은 건물들로 채워지고 있다. 새 아파트가 들어서며 동네의 모습은 달라졌지만, 그 변화의 속도만큼 오래된 흔적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도 함께 보인다.

철길은 수색동의 풍경뿐 아니라 동네의 인상도 만들었다. 기차가 오가고 선로가 이어지는 동안 사람들은 철길을 따라 집을 짓고 가게를 열었다. 철길은 어디론가 떠나는 길이면서, 매일 같은 자리로 돌아오는 사람들의 생활 공간이기도 했다. 수색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역과 열차가 먼저 떠오르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골목에서 만난 오래된 가게와 새 아파트는 서로 다른 시간을 보여준다. 오랫동안 이곳을 지켜온 건물 곁으로 낯선 풍경이 조금씩 자리를 넓혀 간다. 동네는 늘 변하지만, 그 변화가 모든 흔적을 한꺼번에 지우는 것은 아니다. 익숙한 길과 새로 생긴 건물 사이를 걷다 보면 수색동이 지나온 시간과 앞으로 달라질 모습이 한데 겹쳐 보인다.

골목을 걷다 보면 오래된 금은방과 새 아파트가 서로 다른 시간의 풍경을 한 화면 안에 놓는다. 한쪽에는 오래도록 자리를 지킨 가게가 있고, 다른 쪽에는 새로 지은 건물과 정돈된 길이 이어진다. 어느 한쪽이 완전히 사라지거나 다른 한쪽이 온전히 자리 잡은 것은 아니다. 수색은 지금도 옛 동네와 새로운 도시 사이를 지나고 있다.

물에서 시작한 이름은 철길을 지나 아파트 단지와 새로운 개발 계획으로 이어진다. 물길이 바뀌고 철도가 놓였으며, 오래된 집들이 사라진 자리에 새로운 건물이 들어섰다. 수색동은 그렇게 여러 번 모습을 바꾸어 왔다. 지금의 풍경도 언젠가는 오래된 동네의 한 장면으로 기억될 것이다.

Copyright @1eegyumin All rights reserved. taken in 서울시  은평구 수색동 by @1eegyumin
38
2 days ago
Download
동대문구 제기동

제기동이라는 이름에는 오래전 이곳에서 지내던 제사의 흔적이 남아 있다. 조선시대 왕은 농사의 신에게 제사를 올리고, 직접 밭을 갈며 한 해의 풍년을 기원했다. 그 의식이 열렸던 곳이 선농단이다. 사람들은 이곳을 제터 또는 계터라 불렀고, 그 뜻을 한자로 옮기면서 제기라는 이름이 생겼다. 지금의 동네 이름에는 농사를 짓고 풍년을 바라던 사람들의 마음이 담겨 있다.

선농단의 시간은 순탄하게 이어지지 못했다. 일제강점기에 제사가 중단되고, 제단이 있던 자리에는 청량대라는 공원이 들어섰다. 사라질 뻔한 의례를 다시 이어간 것은 이곳 주민들이었다. 주민들은 1979년 선농단친목회를 꾸려 제사를 되살렸고, 1992년부터는 동대문구가 그 전통을 이어받았다. 지금 선농단은 사적으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다. 한때 끊겼던 제사가 오늘날까지 이어진다는 사실은 이 장소가 단순한 옛터로만 남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제기동을 가로지르는 정릉천을 따라 걸었다. 북한산 자락에서 시작한 물길은 주택가와 도로 사이를 지나 청계천으로 이어진다. 지금은 내부순환로가 하천 위를 가로지르고 있지만, 이 일대에는 한때 물을 이용해 농사를 짓던 땅이 펼쳐져 있었다. 고가도로 아래로 흐르는 물과 그 주변의 풍경을 보고 있으면, 도시가 들어서기 전 이곳의 모습은 어땠을지 잠시 상상하게 된다.

주택가 안쪽으로 들어가면 반듯하게 이어지는 골목 사이로 도시형 한옥이 남아 있다. 제기동의 한옥들은 1940년 토지구획정리사업으로 격자형 도로와 필지가 만들어진 뒤 들어서기 시작했다. 좁은 골목을 따라 이어지는 기와지붕과 대문은 시장으로 바뀐 집들도 품고 있다. 지금은 가게와 창고로 쓰이는 곳도 있지만, 이 골목에는 한때 사람들이 모여 살던 주거지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다.

제기동의 또 다른 얼굴은 시장이다. 서울약령시는 청량리역과 가까운 교통 여건을 바탕으로 1960년대부터 한약재 상인들이 모여들며 성장했다. 1970년대에는 종로 일대의 약재상까지 이곳으로 옮겨오면서 전문 약재시장으로 자리를 잡았고, 1995년 서울약령시라는 이름을 얻었다. 골목을 걷다 보면 말린 뿌리와 열매, 약재가 담긴 자루들이 눈에 들어온다. 선농단에서 풍년을 기원하던 땅은 이제 전국에서 온 약재가 모이고 다시 흩어지는 장소가 되었다.

시장에는 약재만 모이는 것이 아니다. 청량리청과물시장에서는 경기도와 강원도에서 온 농산물이 새벽부터 거래된다. 1958년 농민들이 청량리역을 통해 농산물을 가져와 팔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시장이다. 역을 통해 들어온 과일과 채소는 이곳에서 다시 전국으로 향한다. 사람과 물건이 모이고 흩어지는 흐름은 달라졌지만, 이곳이 오래전부터 주변 지역과 서울을 잇는 장소였다는 점은 변하지 않았다.

선농단에서 풍년을 기원하던 의식은 사라졌지만, 농사와 먹거리를 둘러싼 이야기는 제기동에 다른 모습으로 남아 있다. 선농제 뒤 왕이 백성에게 국밥을 나누어 주었다는 이야기에서 설렁탕의 이름이 비롯되었다는 설도 전해진다. 다만 설렁탕의 유래로 널리 알려진 이야기 가운데 하나로, 확정된 기원이라기보다 오래 이어져 온 전승으로 보는 편이 맞다.

제기동은 제사를 지내던 터에서 시작해 한옥 골목과 시장으로 이어진 동네다. 풍년을 바라던 마음은 약재와 농산물을 사고파는 사람들의 손길로 바뀌었고, 옛 제터 주변에는 오늘도 사람들의 생활이 이어지고 있다.

Copyright @1eegyumin All rights reserved. taken in Jegi-dong by @1eegyumin
54
5 days ago
Download
장안동의 디테일을 A7R6로 담아보기 #협찬 #소니코리아 

일상의 풍경을 더 가까이서 바라보기

Copyright @1eegyumin All rights reserved.

#소니 #sony #a7r6포토그래퍼 taken in 서울시 동대문구 장안동 by @1eegyumin
29
7 days ago
Download
광진구 광장동

광진구라는 이름은 광장동에서 시작됐다. 조선시대 한강을 건너던 나루, 광나루가 있었다. 강폭이 넓은 나루라는 뜻의 광나루를 한자로 광진이라 불렀고, 1995년 성동구에서 분리된 광진구는 그 이름을 가져왔다. 광장동이라는 이름도 광장리의 ‘광’과 이웃한 장의동의 ‘장’을 하나씩 따서 만들어졌다. 구의 이름도, 동의 이름도 한강을 건너던 나루에서 이어져 온 셈이다.

광장동은 한강과 아차산 사이에 놓인 길목이었다. 삼국시대에는 아차산성이 들어섰고, 조선시대에는 광나루를 통해 사람들이 강을 건넜다. 산과 강 사이에 놓인 지리적 조건은 오래전부터 이곳의 모습을 결정해왔다. 지금도 한강 쪽으로 내려가면 넓은 강이 펼쳐지고, 반대편으로 고개를 들면 아차산이 보인다.

지금의 광장동은 아파트와 학교가 들어선 주거지가 됐지만, 이 풍경이 만들어진 시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다. 1977년 구의동에서 광장동이 분리된 뒤 동네의 모습도 빠르게 달라졌다. 오래된 나루와 성곽의 시간이 지나간 자리에 사람들이 모여 살 집이 들어섰다.

그 변화를 보여주는 곳 가운데 하나가 워커힐아파트다. 1978년 세계사격선수권대회가 서울에서 열렸을 때 선수촌으로 지어진 아파트로, 대회가 끝난 뒤 일반에 분양됐다. 아차산 기슭에는 그보다 먼저 워커힐 호텔이 들어섰다. 1963년 문을 연 호텔은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 사령관이었던 월턴 워커 장군의 이름을 따왔다. 산 아래 호텔이 들어서고, 그 옆에 아파트가 들어섰다. 광장동은 그렇게 오래된 나루에서 새로운 주거지로 조금씩 모습을 바꿔갔다.

학교도 하나씩 생겼다. 아이들이 집을 나서 학교로 향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하루가 이곳에 쌓였다. 나루를 건너던 사람들이 지나가던 길은 출근길이 되었고, 산길은 산책로가 되었다. 동네의 쓰임은 달라졌지만 사람을 모으고 길을 이어주는 장소라는 성격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큰길 끝으로 천호대교가 보였다. 지금은 자동차가 빠르게 오가는 다리지만, 이 일대가 예전 광나루가 있던 곳이다. 배가 사람과 물자를 실어 나르던 자리에 도로가 놓였다. 강을 건너는 방법은 달라졌지만, 강을 건너기 위해 사람들이 이곳으로 모였다는 사실은 그대로다.

광장동의 북쪽에는 아차산성이 있다. 삼국시대에 축조된 성으로, 한강을 내려다보는 산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아차산 일대는 한강을 차지하기 위해 백제와 고구려, 신라가 맞섰던 곳이기도 하다. 산성에서 내려다보면 왜 이곳이 오래전부터 중요한 길목이었는지 조금 알 것 같다. 산과 강이 만나는 자리는 예나 지금이나 사람을 움직이게 한다.

광나루역에 서면 그 시간이 다시 겹쳐 보인다. 오래전 배가 오가던 나루의 이름을 지금은 지하철역에서 부른다. 광나루라는 이름은 사라지지 않고 새로운 도시의 풍경 속으로 들어와 있었다.

삼국의 성이 있었고, 한강을 건너는 나루가 있었다. 그 자리에 호텔과 아파트가 들어섰고, 이제는 학교와 지하철역이 있는 평범한 주거지가 되었다.

광장동을 걷다 보면 서로 다른 시대의 풍경이 특별히 구분되지 않은 채 한 동네 안에 놓여 있다. 산과 강 사이를 오가던 길 위로 오늘도 사람들이 걷고 있다.

Copyright @1eegyumin All rights reserved. taken in 서울특별시 광진구 광장동 by @1eegyumin
73
9 days ago
Download
이문동의 디테일을 A7R6로 담다 #협찬 #소니코리아 

익숙한 동네 풍경도 자세히 바라보기

Copyright @1eegyumin All rights reserved.
#소니 #sony #a7r6포토그래퍼 taken in 동대문구 이문동 by @1eegyumin
40
11 days ago
Download
동대문구 장안동

장안이라는 말은 보통 ‘장안의 화제’처럼 도읍을 뜻하는 말로 익숙하다. 그런데 장안동의 장안은 조금 다르다. 조선시대 군마를 키우던 목장 안쪽 벌판인 마장안벌에서 왔다는 설이 있고, 중랑천을 끼고 펼쳐진 장한벌에서 비롯됐다는 설도 전해진다. 어느 쪽이든 장안동은 도읍이 아니라 들판의 이름에서 시작한 동네였다.

지금의 장안동에는 아파트와 주택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지만, 본래는 중랑천이 넘치던 범람원이었다. 개화기부터 농토로 일구어진 벌판은 일제강점기에 동양척식주식회사의 소유가 되었다가 해방 뒤 농지개혁을 거쳤다. 이후 1970년대 토지구획정리사업이 시작되면서 논과 밭은 하나둘 주택지로 바뀌었다. 1975년 장안동이라는 이름이 생겼고, 1980년대부터 지금과 같은 도시의 모습이 갖춰지기 시작했다. 들판이 사라진 자리에 집과 도로가 들어섰지만, 그때의 흔적은 아직 동네 곳곳에 남아 있다.

장안근린공원 바둑 쉼터에 어르신들이 앉아 있었다. 소나무 그늘 아래 바둑판이 놓이고, 말없이 돌을 옮기는 손만 움직였다. 이 일대가 한때 무와 배추, 미나리를 키우던 들판이었다는 이야기를 떠올리니 지금의 풍경이 조금 다르게 보였다. 미나리공원과 한내공원이라는 이름도 남아 있었다. 한내는 중랑천의 옛 이름이라고 한다. 사라진 들판과 물길이 이제는 공원의 이름으로 남아 있는 셈이다.

학원 간판이 빼곡한 어린이보호구역 골목을 지나 장한평역 쪽으로 걸었다. 장한평이라는 이름은 이곳의 옛 지명에서 이어졌고, 자동차시장 앞에서 시작해 사가정로와 만나는 길에는 장한로라는 이름이 남아 있다. 지금은 보이지 않는 들판의 이름이 역과 도로를 따라 이어지고 있었다. 풍경은 달라졌는데 이름은 그대로였다.

장안동하면 자동차를 빼놓을 수 없다. 1970년대 이후 자동차 매매와 부품, 정비업체가 이 일대로 모이면서 장안동은 오랫동안 서울 자동차 산업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자동차를 사고팔고 고치는 사람들이 모여들던 거리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시설이 낡고 온라인 중고차 시장이 커졌지만, 정비소 앞에 쌓인 범퍼와 셔터 위의 작은 하트 하나에서는 여전히 이 거리의 시간이 느껴졌다.

또 다른 골목으로 들어섰다. 철물점 옆에 꽃집이 있고, 모퉁이에는 국수집이 문을 열어두고 있었다. 아파트 현관에는 숫자가 적혀 있고, 맞은편 오래된 빌라에는 기와 처마가 얹혀 있었다.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골목이었다. 그런데 이런 풍경을 보고 있으면 장안동이 어떤 동네인지 조금 알 것 같았다.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이 특별한 구분 없이 한 골목 안에 함께 있었다.

말을 키우던 벌판은 농토가 되었고, 농토는 집과 도로가 되었다. 그 사이에 자동차를 사고파는 거리가 생겼고, 오래된 집 옆으로 새로운 건물이 올라가고 있다. 동네의 모습은 계속 달라졌지만 장한평과 한내, 미나리 같은 이름은 아직 이곳에 남아 있었다.

장안동을 걷고 나니 처음 들었던 이름이 다시 생각났다. 장안은 도읍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 오래전 이곳에 펼쳐져 있던 벌판에서 시작됐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집과 도로가 가득한 동네지만, 그 아래에는 들판이 있었고 그보다 오래전에는 말이 뛰놀던 시간이 있었다.

동네는 계속 바뀌는데, 이름은 가끔 그보다 오래 살아남는다.

Copyright @1eegyumin All rights reserved. by @1eegyumin
59
13 days ago
Download
A7R6로 보는 목동의 디테일 #협찬 #소니코리아 

비행기를 확대해보니 항공사를 맞출 수 있네요🫢
6680만 화소의 힘을 느껴보시죠!

Copyright @1eegyumin All rights reserved.

#소니 #sony #a7r6포토그래퍼 taken in 서울시양천구 목동 by @1eegyumin
30
15 days ago
Download
양천구 목동

목동역에서 내렸다. 출구를 올라오자 넓은 도로와 가지런히 늘어선 가로수, 일정한 간격으로 자리 잡은 아파트가 눈에 들어왔다. 길을 걷는데 묘하게 반듯하다. 다른 동네에서는 골목을 따라 건물이 생기고, 그 사이에 길이 만들어진 흔적을 쉽게 볼 수 있는데 목동은 조금 달랐다. 처음부터 이곳에 도시를 그려놓고, 그 위에 동네를 만든 것 같았다.

목동은 원래 지금과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안양천을 끼고 있는 낮은 땅에는 논과 밭이 있었고, 물이 자주 넘는 곳이라 둑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 1980년대 서울의 신시가지 개발이 시작되면서 그 풍경이 크게 바뀌었다. 살던 사람들이 다른 곳으로 이주하고, 논과 밭이 있던 자리에 아파트와 도로, 공원이 들어섰다. 지금 걷고 있는 이 반듯한 동네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파리공원으로 들어갔다. 목동신시가지가 만들어질 무렵 조성된 공원으로, 서울과 파리의 교류를 기념해 이름 붙여진 곳이라고 한다. 조금 이른 가을이라 나무는 아직 초록이 짙었다. 유모차를 밀고 나온 사람도 있었고, 카페 앞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도 있었다. 넓은 나무 그늘 아래에는 각자의 시간이 놓여 있었다. 처음부터 계획된 공원이었지만, 그 안에서 사람들이 보내는 하루까지 계획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안양천으로 걸어갔다. 자전거도로 위로 사이클 복장을 한 사람이 빠르게 지나갔고, 그 옆 산책로에는 또 다른 사람이 천천히 걷고 있었다.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강 너머로 아파트가 이어지고, 구름이 물 위에 비쳤다. 목동이 왜 이곳에 만들어졌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안양천을 곁에 두고 넓은 땅을 정리한 뒤, 그 위에 새로운 도시를 올려놓은 동네.

다시 아파트 단지 안쪽으로 들어왔다. 오래된 아파트 입구에는 흰 페인트로 동호수가 적혀 있었고, 문 앞에는 보조바퀴가 달린 작은 자전거 한 대가 놓여 있었다. 아파트는 오래됐지만 자전거는 새것 같았다. 그 장면을 보고 있으니 목동의 시간이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재건축 이야기가 오랫동안 이어지고 있는 동네지만, 아직 이곳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아이가 자라고, 누군가는 자전거를 배우고, 누군가는 매일 같은 길을 지나 출근한다.

횡단보도 앞에서 엄마와 아이를 만났다. 아이는 무언가를 손에 들고 뛰었고, 그 옆으로 자전거를 탄 사람이 지나갔다. 그 모습을 보면서 처음 목동역에서 느꼈던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목동은 분명 계획해서 만든 동네다. 도로도, 아파트도, 공원도 처음부터 자리를 정해두고 만들어졌다. 하지만 그 위에 쌓인 시간은 계획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사람들이 들어와 살고, 아이들이 자라고, 나무가 자라고, 작은 자전거 한 대가 아파트 현관 앞에 놓인다. 반듯하게 설계된 도시 위에도 결국 이런 평범한 하루가 쌓인다. 그렇게 목동은 지금의 동네가 되어 있었다.

Copyright @1eegyumin All rights reserved. taken in 서울시양천구 목동 by @1eegyumin
115
17 days ago
Download
가을이 오면 걸어야 할 서울 산책 코스
인왕산에서 서촌까지📸

➡️➡️➡️

Copyright @1eegyumin All rights reserved.

가을이 오기 전에, 먼저 한 번 걸어봤다.

인왕산 범바위에서 시작해 수성동계곡을 지나 서촌으로 내려오고, 효자로를 따라 홍건익가옥까지. 산에서 시작해 오래된 골목과 도시의 풍경을 지나 다시 오래된 집 앞에서 끝나는 길이다.

아직 단풍은 들지 않았다. 나뭇잎운 여전히 초록이고 햇빛도 여름의 끝자락에 가까웠다. 그래서 오히려 좋았다.

단풍이 가장 짙어졌을 때보다 조금 먼저 걸어보면, 가을이 오기 시작하는 순간을 기다리는 기분이 든다.

오늘은 그 길을 미리 걸어봤다.

범바위에서 내려와 수성동 계곡으로 향했다.

계곡에 도착했는데 물은 없었다. 대신 물이 흘렀던 길이 남아 있었다. 바위 사이로 이어지는 물길의 흔적과 계곡을 따라 자란 나무들. 물이 보이지 않으니 오히려 이곳이 왜 계곡이라 불리는지 더 오래 바라보게 됐다.

수성동 계곡은 겸재 정선의 그림에도 등장했던 곳이다. 인왕산 아래의 풍경은 오래전부터 사람들의 눈에 담겼고, 지금도 서울 한가운데서 자연의 흔적을 만날 수 있는 장소로 남아 있다.

가을이 오기 전이라 나무는 아직 초록이었다. 단충도, 흐르는 물도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빈자리가 싫지 않았다.

계곡에는 계절마다 다른 풍경이 남는다. 물이 흐르는 날도 있고, 마른 물길만 남는 날도 있다. 오늘은 후자의 풍경을 만났다.

어쩌면 가을 산책도 비슷할지 모르겠다. 가장 화려한 순간만 기다리는 게 아니라, 그 계절의 오기 전의 풍경까지 천천히 바라보는 것.

계곡을 지나 골목으로 내려왔다.

길을 걷다 윤동주 하숙집터를 만났다. 지금은 그 흔적을 알리는 표석만 남아 있지만, 이 골목 어딘가에서 한 사람이 머물며 시를 쓰고 서울의 시간을 보냈다는 사실은 쉽게 지나치기 어렵다.

산에서 내려온 길이 이제 사람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가을 산책은 풍경만 보는 일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걷다가 우연히 오래된 시간을 만나는 일.

서촌으로 들어왔다.

큰 길을 따라 걷는 것보다 골목으로 걷는 걸 좋아한다. 오래된 집과 새로 생긴 가게가 붙어 있고, 담장 아래에는 작은 화분이 놓여 있다. 

서촌은 유명한 장소도 많지만 그냥 천천히 골목을 둘러보는 것이 더 좋은 동네 같다.

특별한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걷다 보면 마음에 드는 장면이 하나씩 나타난다.

아직 단풍은 없지만, 가을에 이 길을 다시 걸으면 지금과는 다른 색이 되어 있을 것이다.

서촌에서 효자로로 나왔다.

골목의 분위기는 조금씩 달라진다. 오래된 건물 사이로 카페가 들어서고, 담장 너머로 나무가 보이고,

사람들이 천천히 거리를 오간다. 관광객이 많은 곳도 있지만 한 블록만 벗어나면 금세 조용해진다.

서촌에서 가장 유명한 카멜커피를 멍하니 바라봤다.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과 커다란 은행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작년 가을에 단풍과 함께 찍었던 이미지가 떠올랐다.

이런 풍경이 서울을 걷는 재미인 것 같다. 완전히 오래된 것. 완전히 새로운 것. 시간이 한꺼번에 겹쳐 있다.

보안회관 앞에서도 한참을 서 있었다. 오래된 건물의 모습과 그 주변에 새롭게 생겨난 공간들이 한 장면 안에 놓여 있었다.

효자로를 걷다 보면 굳이 무언가를 찾아다니지 않아도 된다. 건물 하나를 보고, 나무 한 그루를 보고, 길 건너 사람을 보고, 마음에 드는 카페 앞에서 잠시 멈추면 된다.

가을에는 이런 길이 더 좋아질 것 같다.

걷다 보니 마지막 목적지에 도착했다.

📍홍건익 가옥

도시의 건물들 사이에 남아 있는 오래된 한옥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췄다. 산에서 내려와 계곡을 지나고, 골목과 큰길을 지나 여기까지 왔다.

처음이는 가을 산책을 하려고 나섰는데, 돌아보니 한 계절의 풍경만 보고 온 건 아니었다.

인왕산의 자연과 서촌의 골목, 효자로의 도시 풍경, 그리고 오래된 집까지.
서울은 걷는 만큼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인왕산 범바위에서 시작해 수성동 계곡을 지나 윤동주 하숙집터, 서촌 골목, 효자로를 거쳐 홍건익가옥까지.

산에서 시작해 계곡을 지나고, 골목과 도시를 걷다가 오래된 한옥에서 끝나는 길이다.

아직 단풍이 들기 전이라 초록이 더 많았지만, 그래서 오히려 가을을 기다리며 걷기 좋았다.

올가을 서울에서 어디를 걸을지 고민된다면, 이 길을 떠올려야겠다.

단풍이 물들기 시작하는 날 다시 이 길을 걸어보고 싶다.

그때는 오늘과 같은 풍경이면서도 taken in 서촌 Seochon Hanok Village, Seoul Korea by @1eegyumin
45
19 days ago
Download
동대문구 이문동

이문(里門). 마을 어귀에 세웠던 문이다. 조선시대에는 도적을 막기 위한 방범 시설의 역할도 했다고 한다. 세조 11년인 1465년 한성부에 이문을 설치하라는 명령이 내려졌고, 그렇게 생겨난 문은 오래전 사라졌지만 이름만은 남았다. 마을을 지키던 문은 없어지고, 그 이름이 하나의 동네가 됐다.

이문동은 내가 사는 휘경동 바로 옆이다. 걸어서도 금방인데 카메라를 들고 제대로 들어온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처음 향한 곳은 한국외국어대학교였다. 1954년 종로에서 문을 연 한국외대는 1956년 현재의 이문동으로 캠퍼스를 옮겼다. 그때부터 외대는 이문동의 풍경과 함께 시간을 보내왔다. 가을 햇살이 캠퍼스 입구에 내려앉고 학생들이 오갔다. 자전거가 세워진 길을 지나며 문득 생각했다. 이문동에서 ‘외대 앞’이라는 말은 단순히 학교 앞을 뜻하는 것보다 오래된 장소의 이름처럼 들린다. 학교가 있고, 학생들이 오가고, 그 주변으로 상점과 골목이 이어지면서 이 동네만의 풍경을 만들어왔다.

골목으로 들어가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오래된 적벽돌 건물과 새 아파트가 한 골목 안에서 마주 보고 있었다. 얽힌 전선 아래로 좁은 길이 이어지고, 그 끝에는 높은 아파트가 보였다. 이문동은 재개발이 진행되면서 주거 풍경이 빠르게 달라지고 있는 곳이다. 그런데 골목을 걷다 보면 개발이라는 말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들이 있다. 오래된 담장과 빛바랜 벽돌, 담장 너머로 살짝 고개를 내민 한옥 지붕. 없어질 풍경을 찾아온 것도 아닌데, 자꾸 오래 바라보게 됐다.

재개발 구역 쪽으로 나오니 철거가 끝난 자리와 아직 사람이 사는 집이 맞닿아 있었다. 펜스 하나를 사이에 두고 한쪽은 비어 있고, 다른 한쪽에는 생활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도시가 바뀌는 순간에는 이런 경계가 생기는 것 같다. 완전히 과거도 아니고, 아직 미래도 아닌 자리. 그 사이에서 누군가는 계속 오늘을 살아가고 있었다.

중랑천 쪽으로 걸었다. 골목과 건물 사이를 빠져나와 물가에 서니 동네의 표정이 조금 달라졌다. 잔잔한 물 위로 아파트와 하늘이 함께 비치고, 자전거를 탄 사람들이 천천히 지나갔다. 이문동의 한쪽을 따라 흐르는 물길이 도시의 풍경을 잠시 느슨하게 풀어놓는 것 같았다. 조금 전까지 좁은 골목을 걷고 있었는데, 물가에 서니 시야가 멀어졌다.

다시 신이문역 쪽으로 돌아왔다. 이문동에는 외대앞역과 신이문역이 있고 철길이 동네의 풍경을 가르고 있다. 역 앞 큰길에서 골목을 바라보니 쌀 방앗간 간판과 가로수 그늘, 그 뒤로 솟은 새 아파트가 한 프레임 안에 들어왔다. 어느 시대의 풍경인지 한 번에 설명하기 어려웠다. 오래된 것과 새로 생겨난 것이 서로의 배경이 되어 있었다.

다시 골목으로 들어왔다. 오래된 빌라가 이어지고, 누군가는 주차된 차 옆에 쪼그려 앉아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담장 위로 한옥 지붕 하나가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처음에는 이문이라는 이름부터 생각했다. 마을을 지키던 문은 사라졌지만, 동네를 이루는 것들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오래된 집도, 골목도,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이문동은 사라지는 것과 새로 생기는 것이 한 동네 안에서 계속 마주치는 곳이었다. 그런데 그 사이를 걷고 있으면 결국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건 거창한 변화가 아니라 그 사이에 남아 있는 평범한 풍경이었다.

Copyright @1eegyumin All rights reserved. taken in 동대문구 이문동 by @1eegyumin
68
24 days ago
Download

Download All

Save the photos and videos currently loaded on this page.

0Photos
0Videos
Ready to download 0 / 0

Keep this tab open until your download is ready.

back to up